하인리히 E. 야콥 지음·박은영 옮김 우물이있는집 발행·1만 8,000원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을 한 잔의 커피로 시작한다. 커피는 언제부터 그렇게 특별하고 또한 보편적인 음료가 됐을까.
독일 출신 문필가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1889∼1967)의 '커피의 역사'는 예멘의 사막에서 처음 커피 나무가 발견됐다는 전설부터 20세기 초 세계 커피시장의 경제사까지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처럼 짜맞춰 소설처럼 재미있게 썼다. 미시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1935년 영국에서 나와 그동안 12개 국어로 번역·출간됐다.
지은이는 처음 이슬람의 음료이던 커피가 유럽 기독교 세계로 들어가 널리 퍼진 내력과 커피의 카페인 성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 커피가 예술과 정치에 미친 영향, 17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커피 시장 쟁탈전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커피의 역사와 경제, 문화를 솜씨 좋게 엮은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의 커피와 기독교의 와인을 문명을 갈라놓은 동력으로 파악하는 시각이다.
와인은 기독교 세계에서 예수의 피로 숭배된 반면,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한 이슬람권에서 커피는 마호메트가 졸음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가 전해준 신의 선물로 칭송됐다. 지은이는 마시면 취하는 와인과, 정신을 맑게 해주는 커피의 서로 다른 성질이 문명까지 바꿨다고 말한다.
육체적 움직임과 정신적 격동을 표현하기를 좋아한 헬레니즘 문화가 와인의 산물이라면,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의 이슬람 건축은 커피를 즐기는 데서 비롯된 침착하고 냉철하며 사색적인 기질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커피가 예술과 정치에 미친 영향이나 카페인 논쟁은 재미있게 읽힌다. 이를테면 17세기 영문학은 런던의 커피하우스에 진을 치고 살았던 드라이든, 포프, 스위프트 등 시인을 중심으로 만개했으며, 1789년 프랑스혁명도 파리의 카페에서 자주 벌어지던 토론과 연설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신 남편들이 밤에도 잠을 안자는 바람에 침대가 허전하다며 아내들이 커피를 비난했던 17세기 말 런던 풍경 등 실소를 자아내는 에피소드도 자주 등장한다.
지은이는 매끄러운 글솜씨를 자랑한다. 아쉬운 것은 번역이다. 문장은 무리없이 옮겼지만, 이탈리아어나 독일어 인명을 영어 발음으로 적거나, 같은 인명과 지명을 오락가락 달리 표기한 데가 많아 짜증스럽다. 너무 낯설어서 설명이 꼭 필요한 대목을 그냥 건너뛰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불친절하고 꼼꼼하지 못한 번역은 독자를 쫓아버릴 수도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