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의 당락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만큼의 득표차(差)로 승패가 갈렸는지도 중요하다. 득표 차가 민심을 보다 자세히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향후 국정의 방향과 방식에 결정적 시사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이회창 후보간의 득표차는 2.3%이다. 48.9% 대 46.6%로 표가 갈렸다. 결코 큰 득표차라고 볼 수 없다. 유권자가 엇비슷하게 이분법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노 당선자에 대한 지지세력과 상대 후보 지지세력간에 상당 수준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양분화 현상은 노 당선자가 자기 뜻을 실천해 나가면서 동시에 반대 의견도 경청해 좀 더 중용적이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혹자는 2.3% 정도의 득표차라면 노무현 당선자가 자기 노선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큰 힘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 후보보다 1.6% 앞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보다 더 큰 차이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현 부시 대통령은 전체 득표율에서는 0.3% 뒤졌지만 플로리다 주에서 불과 몇백 표 앞서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함으로써 간신히 당선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자기 노선을 완고하게 고집한다. 또 혹자는, 1인을 뽑는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 원칙에 입각한 것이므로 득표차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단 1표 차로 이기더라도 승자가 자기 뜻을 강하게 밀어 붙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새 대통령이 과단성 있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투표자 중 반 이상이 자기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상대방보다 불과 2.3% 앞서 당선된 상황에서, 자기 입장만 고수해선 곤란하다. 노 당선자가 김 대통령보다 더 큰 차이로 이겼지만, 김 대통령보다는 훨씬 더 반대세력을 아우르는, 그래서 중용·중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골고루 다독거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김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부시 대통령이 당선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노선을 강력히 추진한다지만, 9·11테러와 이라크 사태라는 예외적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전시와 같은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노 당선자는 자기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은 사람들의 이익과 의견을 진지하게 감안해야 한다. 특히 클린턴의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의 경우는 승자독식의 정치적 위험성을 잘 예시해준다. 집권 초기 2년간 클린턴은 보수적 공화당원은 물론 중도적 평균시민도 거부반응을 보인 강한 진보성향의 정책들을 소신껏 추진하다가 정치적 역풍을 맞았다. 정책성과도 얻지 못하고 1994년 중간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중간선거로 의회를 공화당에 뺏긴 후에야 클린턴은 승자독식의 함정을 인지했다. 초기의 진보노선에서 보다 중도쪽으로 이동해 반대의견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클린턴은 오랜 숙원이던 예산균형, 복지개혁, 기업규제개혁 등 업적을 쌓았고 대외정책도 무난히 이끌었다. 개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이 높은 지지를 유지하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소신으로부터는 좀 멀어졌지만 반대세력도 아우르는 중도 기조를 지켜 여러 정책성과를 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 당선자가 반대세력의 이익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 차원의 조언만은 아니다. 득표차가 크지 않았던, 즉 유권자가 양분되어 지지세력 못지 않게 큰 반대세력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따른 현실정치적 조언이기도 하다. 클린턴의 예에서 보듯이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면 반발에 부딪쳐 정치적 좌절을 겪기 쉽다. 중도를 지향할수록 선거에서 뿐 아니라 국정수행에 있어서도 승자가 될 수 있음을 되새겨볼 때이다.
임 성 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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