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희곡 응모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디지털이 요동을 쳐도 연극은 영원한 아날로그성 본질을 지닌다. 그리고, 희곡을 쓰는 젊은이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딱딱한 말의 본질을 꿰뚫기 위한 굴착공사를 계속하고 있다.140편이 넘는 응모작 중에서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브라질리아' '발' '불면증' 세 작품이었다. 물론 인터넷 중독 증세를 다룬 '굴맛 카스를 마시다'와 모창 가수를 소재로 한 '제307조 1항' 같은 작품은 흥미로운 공연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희곡언어로서의 말은 일상언어를 뛰어넘는 함축성과 상징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재 이상의 문학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브라질리아' '발' '불면증' 세 작품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해도 좋을 만큼 언어 탁마와 극적 구성이 탄탄했다. 김현경의 '발'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글쓰기의 고통을 다룬 작품이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부패한다'는 영화작가 타르코프스키의 일기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상대적으로 공연성의 단조로움이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김도원의 '불면증'은 문학적 글쓰기와 연극적 상상력의 전개가 잘 맞아떨어진 수작이다. 아르토적 상상력의 전개가 가능한 연출가와 배우를 만난다면 깊이있는 삶의 성찰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불면증'이 수직적 상상력의 전개라면, '브라질리아'는 드넓은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용되는 말 자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한 편의 우화를 보는 듯한 구성은 기존의 사회극과 구별되는 미적 거리를 확보한다.
'불면증'과 '브라질리아'를 놓고 고심한 끝에, 오랫동안 절차탁마한 흔적이 역력하고 좀더 객관적인 공연성을 확보하고 있는 '브라질리아'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좋은 희곡을 만났을 때, 그 다음 선택은 아무래도 공연 성패를 가늠하는 것이 선자들의 시각일 수밖에 없으니까.
/심사위원=이강백 이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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