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 언급은 작게는 퇴임 후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고, 크게는 계보정치나 세 대결로 점철된 낡은 정치의 청산에 일조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풀이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변화 열망, 그 이후 정치권에서 제기된 정치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동교동계 해체는 현실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미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동교동계는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고 노 당선자 주변의 권력 축에는 새로운 세력이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이 이를 공식화한 것은 동교동계의 퇴장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새로운 정치흐름 동참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주기 위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다.
김 대통령 자신과 동교동계가 정치적 구설이나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미연에 막으려는 의중도 있는 듯하다. 대선 후 민주당의 내부 정비 과정에서 이른바 개혁파가 동교동계를 청산의 타깃으로 설정하는 움직임을 보여 자칫 김 대통령마저 시비의 대상에 휘말릴 우려가 있었다.
특히 2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질 당권경쟁에서 동교동계는 낡은 정치의 청산 대상으로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 주변 인사들 사이에 오해와 감정적 앙금이 생길 수가 있으며 이는 양측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게 된다.
김 대통령은 동교동계 해체 언급을 하기에 앞서 노 당선자 및 한화갑(韓和甲) 대표와 사전 교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드라마는 항상 마지막이 중요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라며 "지금은 김 대통령과 동교동계가 그 동안 그려온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라고 말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동교동계는 이미 실체가 없는 상태 아니냐"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한화갑 대표는 "김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마무리와 함께 동교동계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말했고 김옥두(金玉斗) 의원은 "동교동계는 해체라고 할 것도 없는 상태"라고 씁쓸해 했다.
한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는 단일 세력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한 상태다.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이 YS의 대변인 역을 자임하고 있을 뿐 서청원(徐淸源) 김덕룡(金德龍) 의원 등 과거 상도동계 중진은 15대 대선부터 행로를 달리해 각기 독립 계보를 꾸리고 있다. 김무성(金武星) 정병국(鄭柄國) 의원 등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 진영에 편입됐고, 이성헌(李性憲) 김영춘(金榮春) 의원은 김덕룡 의원을 따르고 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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