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차…어여차." 황태 마을의 겨울은 바삐 덕장을 오가는 1톤 트럭의 굉음으로 시작한다. 원두막처럼 얽힌 덕대 사이를 오가는 트럭에선 철 지난 유행가가 흘러나와 인부들의 고함소리와 뒤섞인다. 숨쉬기도 버거운 추위 속에 얼음덩이나 다름없는 얼린 명태를 3m높이 덕대에다 2개 층으로 종일 쉼 없이 거는 작업이다. "흥을 돋우려고"라지만 인부들의 입김을 타고 나오는 소리는 이방인에겐 신음으로 들린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7시. 태백산맥을 맞고 돌아온 찬바람이 귓불을 할퀴고 마르지 않은 명태가 풍기는 비릿함이 코끝을 적신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황태 7할의 고향이라는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3리 황태 마을 새해맞이는 그랬다.
명태가 황태가 되려면 추워야 한다. 명태가 제 꼴 그대로 마르기 위해선 한달 넘게 밤기온이 영하 15도 안팎을 유지해야 하고, 바람도 매서워야 한다.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길목 인제군 용대3리는 이북이 원조격인 황태 덕장 입지로는 남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
푄 현상 때문이다. 태백산맥의 조화로 이곳의 겨울은 유달리 춥고 바람이 많다. 1960년대 초 한 월남 사업가가 이곳을 찾았다가 고향 함경도 같은 겨울 날씨에 무릎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황태 덕장이 섰다.
"황태는 몰라도 사람 살 곳은 못 되여." 박순덕(77) 할머니의 말마따나 밭농사도 제대로 될 리 없는 용대리는 약초 캐고 화전 일구며 근근이 먹고사는 첩첩산중 두메산골이었다. 40년 전 들어선 황태 덕장은 주민들에겐 그나마 복음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산을 내려와 품삯을 받고 덕장일을 시작했다. "옛날에 비하면 일도 아냐." 마을에 황태 덕장이 들어설 때부터 덕장일을 했다는 김원배(58)씨는 "고생하는 사람이 들으면 섭하겠지만 지금 덕장일은 호사"란다. 지금은 트럭이 동해안에서부터 냉동 명태를 덕대 밑까지 싣고 오지만 그땐 명태를 얼리고 나르는 일까지 덕장 사람들 몫이었다. 46번 국도를 따라 흐르는 용대천 한켠을 돌둑으로 막고 명태를 넣어 얼리는 것으로 용대리는 겨울을 시작했고, 마을엔 겨우내 비린내가 진동했다.
"개천에서 얼린 명태를 지게로 져 나르다 보면 껴입은 옷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붙어 갑옷이 된다"고 한 늙은 덕장 주인은 회고했다. "옷을 못벗어서 대변은 참고 소변은 대충 해결해야 했어. 겨울 한철 덕장일을 하고나면 골병이 들곤 했지." 또 다른 이가 거들었다.
그래서 "막노동보다 후한 품삯을 보고 찾아온 외지인의 태반은 며칠 못 버티고 지게를 벗어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용대리 사람들에겐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용대3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삼거리에 위치한 90m 높이 매바위다. 나서부터 쭉 매바위를 올려다 보며 살아온 용대리 사람들에게 그것은 날개 접은 매처럼 생긴 바위일 뿐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7월, 마을 주민들은 군청 돈 2억원을 끌어다 매바위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려 아래로 떨어뜨렸다.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인공폭포의 탄생이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의 장관에 설악산으로, 스키장으로 향하던 관광객들은 차를 세웠다.
"황태마을의 변화는 매바위 인공폭포 같은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90년대 중반 몇몇이 관광객을 상대로 우연찮게 황태를 팔았고 하나둘 단골이 쌓이면서 돈 된다는 얘기가 돌았다. 덕장일로 받는 품삯이며 덕장 터를 빌려주고 받는 덕세로 만족했던 마을 주민들은 머리를 쳤다. '돈은 이렇게 버는구나.'
마을 주민들은 너도나도 국도변에 가게를 열었다. 판매조합이 만들어지고 가공회사가 들어섰다. 싸리에 꾀서 팔기만 하던 황태를 먹기 좋게 뼈를 바르고 다듬어 포장했다. 요리법을 개발하고 동의보감을 뒤져 황태 효능을 찾아 겨울철 덕장 풍경을 찍으러 온 방송사 카메라 앞에 들이밀었다. 제삿상에나 올라가던 황태가 밥상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한걸음 더 나갔다. "모여 소주 먹다가 황태축제를 열면 전국에 홍보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죠. 모두 맞장구를 쳤어요." 황태축제를 처음 기획했던 김상만씨의 얘기다.
마을 젊은이들은 행사비 1억원 때문에 마뜩찮아 하던 주민들을 일일이 설득했다.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의 돈을 추렴했다. 덕장이 황태로 누렇게 물든 99년3월, 순전히 마을사람 주도로 제1회 황태축제가 열렸다. 대박이었다. 용대리 황태는 전국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30여 가구 400여명 용대3리 주민들 대부분은 황태로 벌어먹는다. 힘있는 젊은 사람은 덕장일로 벌고, 아낙네들은 황태를 다듬고 포장해 돈을 번다. 일흔 넘은 노인도 손아귀 힘만 있으면 반찬값은 너끈히 번다.
불과 10년 전 궁기만 흐르던 용대3리는 인제군 최고의 부촌이 됐다. "가구당 평균 소득이 웬만한 도시 고소득 봉급자 부럽지 않다"는 게 마을 주민 김학주씨의 얘기다. 황태가 돈이 되면서 외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은 신지식마을로 선정됐고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얻었다. 닷컴을 단 마을 홍보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근사하게 갖췄다. 이장 이강렬씨는 "두 번이나 청와대에 초청돼 밥을 얻어 먹었다"고 자랑했다.
용대3리 사람들은 계속 머리를 돌렸다. "돈독이 올랐다"고도 했고, "머리가 트였다"고도 했다. 바람을 놀리기 아까워 풍력발전소도 만들고 폭포물을 얼려 전국 단위 빙벽 등반 대회도 열 생각이다. 황태박물관에다 위락시설까지 건설해 설악산 가는 관광객들을 본격적으로 붙잡을 거창한 계획도 세워놓았다. 마을 공동명의로 3,000여 평 땅까지 벌써 장만해뒀다.
황태마을의 2003년은 위기이면서 기회다. 밀려드는 중국산, 북한산 황태가 30∼40%의 싼 가격으로 용대리 황태의 숨통을 죄어온다. "몇 년 사이 돈을 좀 만지더니 마을 사람들이 너무 무모하게 이것 저것 손대려 한다"느니 "황태를 미끼로 시·군 예산을 독식하려 한다"는 외부의 곱지않은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거듭나는 황태처럼 찬바람에 단련돼온 용대3리 주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하우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인제=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사진 김재현기자 dreamer@hk.co.kr
■12월 덕장에 걸어 3∼4개월 말려야
명태가 황태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3∼4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12월 덕장에 걸린 명태는 모진 바람 속에 인고의 시간을 견뎌 다음해 3월 황태로 수확된다. 짧은 기간에 말린 북어나 반쯤 말려 조림반찬으로 먹는 코다리와 비교할 때 황태는 인고의 시간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격이 다른 셈이다. 그렇게 태어난 황태는 잘 구워진 듯 노릇노릇한 빛깔을 띤다.
명태는 생태, 동태, 북어 등 이름이 다양하지만, 황태에 대한 이름도 다양하다. 건조시킬 때 날씨가 너무 추워 색깔이 하얗게 된 것을 백태라고 하고 날씨가 따뜻해 색깔이 검게 된 것을 먹태라고 한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 수분이 빠져버리면 살이 졸아들어 형편없이 말라버리는데 이를 깡태라고 부른다. 2002년 겨울 이상난동으로 용대리 덕장에서도 깡태 수확이 어느 해보다 많았다.
건조 중 바람 때문에 덕대에서 떨어진 것도 있는데 이것은 낙태라고 한다. 머리나 몸통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은 파태라고 하고, 작업 중에 실수로 내장을 빼내지 못한 채 건조된 것을 통태라고 한다.
진부령 찬 바람을 맞았다지만 우리나라서 생산되는 황태는 동해 연근해산은 거의 없고 대부분 오호츠크, 베링해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수역에서 잡은 것이다. 황태 전문 식당 업주들은 "동해 연근해산 황태는 맛도 다르다"고 하지만 그 맛을 보기는 어렵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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