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인 이기우(李起雨·47) 신부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비닐하우스촌에서 살고 있다. 18평짜리 비닐하우스 집은 칙칙한 거적을 두른 외관과 달리 실내가 아늑했다. 그러나 상수도조차 연결되지 않은 이런 거주지가 성직자의 거소로 낯선 것도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빈민지역 선교사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빈민 사목을 하는 사람이 빈민 지역에 사는 것은 당연하고 실은 저보다 더 오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면서 복음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기우 신부는 "이 곳에 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이 곳 사람들은 서울에 사는 빈민을 말한다.1991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총무를 맡은 해부터 8년 동안 삼양동의 산동네에서 살았던 그는 빈곤의 문제가 과거보다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현재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난곡 지역이 재개발로 해체되고 있으며, 철거민들은 대부분 교외의 비닐하우스촌으로 밀려났다. 빈민사목위가 직접 방문해서 파악한 비닐하우스촌 숫자만 4,600가구에 달한다. 국민소득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왜 빈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과연 해결할 수는 있는가. 그의 말을 들어보았다.
대담=서화숙 문화부장
―아직도 한국에서 빈곤이 문제가 됩니까.
"실은 빈곤은 더 심화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감춰져 있다보니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답답합니다. 한국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느냐, 있습니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늘어날 뿐 아니라 대물림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는데 왜 빈곤층이 더 늘어나는 것입니까.
"빈곤이 대물림된다는 것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이 탐욕스럽다는 증거예요. 그만큼 공정한 분배가 안 됐다는 것이지요.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다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건설교통부는 주택보급률을 높이는 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실제로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120%인데도 집없는 사람이 절반입니다. 산동네 판잣집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저렴한 돈으로 살 수 있는 주거지인데 공무원들 눈에는 불량주택이거든요. 서울시도 불량주택개선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려고 하다보니 모든 산동네가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가운데 빈민들이 살 수 있는 임대아파트는 아주 일부이니 빈민들은 옥탑방이나 지하방으로 밀려납니다. 주거비가 상승하니까 먹고사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임대아파트를 얻은 이들도 외관이 멋있으니 남들이 빈민으로 봐주질 않습니다. 결국 삶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거기에 소득이 불안정하고 교육비 부담이 늘어나다보니 빈곤에서 탈출하기가 힘들지요. 삼양동 산동네에 살던 어느 신자 가정도 초등학교만 졸업한 아버지가 야학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자격증까지 따냈지만 결국 그 집 아들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식점 배달원이 되더군요. 전에는 가난한 집에서 검사 판사도 나왔다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과외를 받는 세상이니 가난한 집에서 교육을 통해 입신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역시 가난한 사람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개인과 관계 없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주택 조세 금융 등 정부 정책이 빈민에게 배려가 없는 것은 문제예요. 구조적으로 가난을 방치하는 것과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 일용직 노동인데, 날이 추운 겨울이나 궂은 날이면 일 자체가 없으니까 수입이 없어요. 그 상태에서 빈곤을 탈출하기는 너무 힘들지요. 애들이 아프면 우선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치료비 구하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92년도에 겪은 일인데, 당시 삼양동 산동네에 사는 집에서 애가 다쳤다고 10만원을 빌리는데, 그 이자가 월 1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빈민사목위원회에서 '명례방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도 낮은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걸 토대로 자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활에 성공한 빈민들이 생겨났습니까.
"조합원이 500명으로 출자금의 5배까지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사업을 하는 생산협동조합들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가장 먼저 생긴 게 '솔샘일터'라는 생산협동조합인데요, 봉제노동자들이 모여 교회의복을 만드는 곳입니다. 수의 제의를 만드는 '옷사랑'이라는 생산협동조합, 도시락 만드는 '한솥밥', 생활한복을 만드는 '옷과 사람들'도 있고 '하늘자리'라는 김치생산협동조합도 있어요. 대부분 평소 하던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업종으로 삼은 것으로 수입이 더 는다기보다는 스스로 번 돈을 알아서 분배하니 일단 고용이 안정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힘있는 신앙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또 일과 삶과 신앙이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그 세가지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들에게는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자금대출과 더불어 경영방법을 지도하기도 하고 대차대조표 읽는 법, 회의하는 법도 가르쳐주지요."
―성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왜 교회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이렇게 애를 쓰십니까.
"가난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빈곤이라는 경제적 가난이 있지요. 이 상태는 필요한 재화의 결핍상태로 절대적으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가난은 청빈(淸貧)으로 이것이 가톨릭에서 말하는 가난입니다. 재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지 않는 상태를 말하지요. 마지막으로 자발적인 가난이 있는데 이를 연대라고 부릅니다. 청빈을 느끼던 이들이 삶 자체도 빈곤하기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것에 반대되는 것이 영적 빈곤인데, 이는 필요이상으로 물질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 영적 빈곤 때문에 경제적 빈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땅 덩어리는 좁은데 한쪽에서는 더 많이 쓰려고 하면 결국 가난한 이들은 전세에서, 월세로, 그조차도 못 대면 길바닥으로 밀려나야 합니다."
―왜 영적 빈곤이 늘어나는 것입니까.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 '잘 살아보세'를 강조하면서 나누자는 의식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 해라, 배워서 남 주냐'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 굉장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입니다. 배워서 서로 나눠야 세상이 돌아가는데, 배움을 출세의 도구로만 삼으면 되겠습니까. 최근 교육열이 높아도 지혜나 진리에 대한 추구는 아니잖아요.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급급해 하는 것이죠. 두번째로 함께 사는 것에 서투른 것 같아요. 체제와 이념의 문제 뿐만 아니라 남녀 사이의 갈등, 학력, 지역, 경제력 차이를 이해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로만 나눔을 얘기하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희망은 있어보입니까.
"가난한 이들은 자조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해야겠지요. 부자들은 청빈을 배웠으면 합니다. 나누는 삶을 살아야지요. 정부는 빈민을 생각하는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시장논리에만 맡겨서는 안됩니다. 교회도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고 가르치지만 말고 신자들이 실천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빈민사목위원회에서는 빈민지역에 지역운동을 펴는 '평화의 집'을 여덟군데 운용하고 있는데 최근 우면동 평화의 집 개소식에 치과의사 한 분이 오셔서 빈민운동에 써달라며 7억을 기증하셨어요. 유산을 최근 받았는데 자기가 쓸 필요는 없다고요. 또 산동네 출신의 유명한 운동선수는 성공한 후에도 계속 빈민들을 위한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또 96년 빈민현장에 파견하는 선교사를 양성하는 '바울로 계획'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20명이 배출되어서 그 중 18명이 빈민들과 함께 빈민으로 살면서 신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기우 신부가 기거하는 집도 바로 이런 빈민 사목을 위한 '우면동 바울로의 집'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5년 전 취임사를 듣고 코끝이 찡했어요. 그러나 IMF 사태로 고금리와 구조조정 정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누리면서 살수 있도록,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노무현 당선자는 가난을 알고 낙오자가 어떤 심정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임기 동안 김대중 정권의 그림자들, 특히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소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약력
▲ 1956년 서울 출생
▲ 82년 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 86년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 88년 사제서품
▲ 88∼91년 명동성당 보좌 신부
▲ 91∼93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총무
▲ 93년∼현재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 99년∼현재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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