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봐주기 사면'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12월31일자로 단행된 정부의 사면조치는 어느 모로 따져보아도 타당성이나 필요성은 고사하고 형평성조차 결여된 것이었다. "판결이 확정된 지 10일밖에 안 되는 사람에 대해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면하는 것은 너무 하다"는 현직 부장판사의 비판은 이번 사면의 부적절함을 잘 말해 주고 있다.우선 정권의 임기 초나 말에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사면조치의 뿌리가 과거의 독재정권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정치욕구를 억압적 수단으로 눌렀던 과거의 군사정권은 때때로 '국민 화합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유화적 제스처로서 사면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정권이 들어선 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같은 명분을 내걸고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관료, 경제인에게 면죄부를 내주는 일이 되풀이되어 왔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단행한 사면조치는 더욱 문제가 있다. IMF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과 공작정치의 중심인물에다가, 이 정권의 치부를 드러냈던 각종 게이트 관련자까지 포함시켰으니 말이다. 게다가 사면대상에 포함된 인사들이 불과 며칠 앞두고 상급법원에 항소 또는 상고해 놓은 것을 포기했다니, 도대체 청와대와 비리 관련자들이 미리 짜고 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혹시라도 이번의 조치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 하여금 취임과 동시에 김 대통령의 두 아들을 비롯한 현 정권의 비리 관련자를 사면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표시한 것이 아닌지도 우려된다. 노 당선자가 '낡은 정치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이제까지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 으레 해왔던 사면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비리 관련자치고 형기를 끝까지 산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돌아다니는 한 부정부패의 척결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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