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통령 선거는 세대·지역·이념 등 다양한 갈등 요소를 드러냈다. 또 우여곡절과 치열한 접전 끝에 박빙의 차이로 승부가 갈렸기에 많은 사람들이 선거 이후의 국론분열을 우려했다. 그러나 선거 1주일 후에 실시된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행스럽게도 노무현(盧武鉉) 지지 집단과 이회창(李會昌) 지지 집단 사이의 심각한 견해 차이나 국론 분열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우선 이회창 전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응답자 대부분이 노무현 당선자의 현재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61%), 앞으로도 국정운영을 잘 해나갈 것으로(75%) 기대하고 있다. 또 대선 기간에 주요 쟁점으로 떠 오른 대미·대북 관계에 대한 시각에서도 노무현 지지자와 이회창 지지자는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바람직한 한미 관계를 물은 질문에 대해 '현재와 같은 긴밀한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노무현 당선자에게 투표한 사람(58%)이나 이회창 전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61%)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미군지위협정(SOFA)에 대해서도 전면적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보는 비율은 노무현 지지자(50%)와 이회창 지지자(58%)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이회창 지지자 쪽이 높았다.
주한 미군의 역할에 대해 '북한 위협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고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긍정적 시각은 노무현 지지자(32%)와 이회창 지지자(42%)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주한 미군에 대해 '남북 화해의 걸림돌이 되고 동북아의 긴장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부정적 견해를 보인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14%)와 이회창 지지자(14%)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 시설 동결 해제에 대해서도 '본격적 핵개발로 이어져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 역시 노무현 지지자(13%)와 이회창 지지자(15%)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으며 '대미 협상을 겨냥한 움직임이므로 실제 핵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도 두 집단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27%). 그 밖에 성장과 분배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 방향, 바람직한 집값 안정책, 새해 상반기 경기 전망 등 국내 문제에 대해서도 두 집단 사이에는 뚜렷한 견해차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에 대해서는 두 집단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청와대, 국회, 정부 중앙부처를 모두 충청권으로 옮겨야 한다'는 견해는 이회창 지지자(9%)보다 노무현 지지자(23%)가 훨씬 많았으며 '현재처럼 모두 서울에 두어야 한다'고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25%)보다 이회창 지지자(55%) 쪽에서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은 시행에 옮기더라도 10여년은 걸릴 일이기 때문에 당장 이로 인한 심각한 국론분열의 우려는 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16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세대간격차는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미 관계 인식에서 그 차이는 크다. 바람직한 한미 관계에 대해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미국과 거리를 두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는 20·30대에서는 과반수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으나 나이가 들수록 그 비율은 격감했다(그림 1). 주한 미군에 대한 인식차도 컸다. 긍정적 시각은 50대 이상에서는 과반수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젊은 세대로 올수록 그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진다(그림 2).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 정향은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결정돼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의 20·30대가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를 5년, 10년 뒤 우리 국민은 특히 대미 관계에 대해 더 큰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지금부터 장기적 안목에서 바람직한 대미 관계 설정을 두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 주 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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