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 통과작들 중 묘사나 서술이 가장 차분하고 빈틈없었던 소설은 '소년'이었다.그런데 '어머니와 외간남자와 버림받은 아이들'이란 옛소설 풍의 구도가 주인공들을 의연히 상투적인 센티멘탈리즘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남성의 폭행 공포를 다룬 '누구세요?'도 비슷하다. 그런 피해망상이 피상적이고 시류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사건의 추상화라는 말미의 그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왔을 까닭이 없다.
'장어잡이'는 그저 그런 풍속 리얼리즘에 머물러 있었고,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작품의 하나인 '목각인형'은 이른바 월남전과 고엽제라는 낡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데다 정면으로 대들지를 못하고 고사해가는 손과 인형 깎기를 작위적으로 대비시킨 진행이 끝내 임포 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틈'은 이른바 레즈비언을 다룬 소설로 절제되고 충격적인 묘사도 신선하고 터부에 대드는 그 저돌성도 높이 살 만했지만 도를 넘는 파격이 결국은 읽는 사람의 윤리의식까지 참섭하고 저울질을 한다. 금기를 순리로 풀지 못하고 더욱 병적으로 '왕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이모와 조카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자문해 보면 그 까닭이 자명해질 법하다.
당선작이 된 '독어(毒魚)'는 바다낚시를 빌어 가족의 붕괴와 자신의 또다른 관계의 결렬을 점검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바람을 탄 듯이 유려하고 힘찬 문체와 그 공평한 시선이다. 복어만 올라오는 갯바위에 버티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렬을 바라보며 멀리 줄을 던지는 화자의 시선은 고뇌에 차 있으면서도 치우침이 없다.
교수와의 관계는 좀 애매하고 난폭해도 보이지만 일종 '공허감에의 의지'라고나 해야 할 배짱으로 그것들을 정리하는 화자의 대범함이 그런 약점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90년대 우리 여성 작가들이 가출은 시켜놓았으나 이 세계와 사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망연히 서 있기나 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들에게 형평을 잃지 않은 이 등거리 시선은 최소한 그 입지점이라도 마련해 줄 것 같다.
/심사위원=이제하 윤흥길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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