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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年 / 羊 어질고 참을성 많은 평화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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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年 / 羊 어질고 참을성 많은 평화의 상징

입력
200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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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癸未)년, 양의 해가 밝았다. 푸른 풀밭 위를 무리지어 노니는 양떼, 복슬복슬한 양털의 느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양은 순하고 어질고 참을성 많은 동물로 통한다. 양은 성질이 온화해 떼지어 살면서도 힘으로 우위 다툼을 하지 않고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한자에서도 큰(大) 양(羊)이 합치면 아름다움(美), 나(我)와 만나면 옳음(義)을 뜻한다. 이밖에도 상서로움(祥) 착함(善) 맛있음(味) 등 양이 어우러진 한자는 대부분 좋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양은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기도 하다.

사람이 양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알려졌다. 양은 유목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동물이지만 농경 민족인 우리네 일상 생활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양띠를 생김새가 비슷한 염소띠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옛 기록에도 삼한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거나 고려 정종 때 개성 근처에서 왕실의 식용으로 양을 길렀으나 사료가 많이 들어 섬으로 귀양 보냈다는 이야기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석암리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양 모양의 패옥(佩玉)과 청동제 꽂이장식, 법천리 백제 무덤에서 발굴된 양 모양 청자, 수락암동 고려 고분의 양 벽화 등 무덤 장식에서는 양의 형상이 적잖게 나타난다. 모두 벽사(썂邪)와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양 그림도 더러 있는데 단원 김홍도 등이 어질고 착한 소년 황초평이 금화산에서 양을 치며 도를 얻었다는 고사를 소재로 남긴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가 눈에 띈다. 신선이 된 황초평은 기독교 성화에 나타난 양 치는 선한 목자 예수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큰 제사에 양을 제물로 쓴 것도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여기서 속죄양(贖罪羊)이란 말이 나왔다.

옛 이야기와 속담에서도 양은 유순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아무리 못된 시어미도 양띠 해 딸을 낳은 며느리는 구박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띠는 부자 못된다'는 속담도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정직하고 너무 맑아서 재물을 모으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습성 때문에 효의 상징으로도 통해 부모 은덕을 모르는 이를 꾸짖을 때 '양도 무릎을 꿇고 어미의 은혜를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낼 때 꿈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떨어져 놀라 깼다. 무학대사는 양(羊) 자에서 뿔과 꼬리를 떼면 왕(王)자가 되니 곧 임금이 될 것이라고 해몽했다. 곧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매 이 때부터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천성이 착해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고 제물로 희생되는 양의 속성이 우리 민족사에 비견되기도 했다.

구한말 지사 김종학 선생은 "흰빛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는 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산양떼를 빼어 닮아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주어진 운명에 거역할 줄 모르니… 슬프다 양떼들이여!"라고 통탄하면서 "둥글게 뭉쳐 뿔로 울타리를 치자"고 외쳤다.

계미년의 지킴이 양처럼 2003년은 온 세상이 평화롭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천 진 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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