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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전라·충청출신 세家長 특별한 새해맞이/세가족 오순도순 "자연에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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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전라·충청출신 세家長 특별한 새해맞이/세가족 오순도순 "자연에 살리라"

입력
200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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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요? 모두가 다 마음 편히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는 거지요."31일 오후 전북 완주군 소양면의 작은 농가에 세 가족이 모였다. 새해를 함께 설계하기 위해서다. 2003년 계미년은 각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태어나 따로 살아온 이들이 한곳에 뭉쳐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는 특별한 해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이 곳에 와 농사를 짓고 사는 노동운동가 출신 전희식(全喜植·45)씨, 중소기업 공장장을 하다 이제는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대전 태생의 임재경(任在京·39)씨, 그리고 고교 졸업 후 17년째 고향인 전북 진안을 지키고 있는 농부 배정환(裵定煥·37)씨가 세 가족의 가장들이다.

이들은 내달이면 덕유산 자락 외진 마을로 들어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아내와 총 8명에 이르는 초·중생 아이들까지 10명에 달하는 대가족이다. 그 곳에서 먹거리, 옷가지, 살 곳을 스스로 해결하며 자연과 생명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계획이다.

이들 셋은 올해 초 '실상사 작은 학교'라는 한 대안학교의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각기 출신지부터 성장배경, 심지어 체격까지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 없었지만 삶을 바라보는 소박하고 맑은 시선만큼은 한결같았다. "아이들을 입시에 매달리게 하지 않고 정말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키워보고 싶어 대안학교에 넣었지요."

서로 의형제를 맺은 이들은 자연스레 가족들의 삶 전체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자연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데 의기가 투합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애써 이뤄 온 기반도 훌훌 털어 버렸다. '쇠로 만드는 건 뭐든지 자신 있다'는 임씨도 25년간의 회사 생활을 접기로 했다.

절대 개발될 가능성이 없는 외진 곳을 찾아다니던 이들은 최근 덕유산 깊은 골짜기 안에서 폐가만 7, 8채 덩그러니 남아있는 마을터를 찾아내 새 생활의 터전으로 점을 찍었다. 이 곳의 버려진 집들을 고쳐 살면서 생태유기농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욕심 부리지 않으면 먹고 살 만큼은 될 것"이라며 전혀 걱정하는 빛이 없다.

아이들 역시 꿈에 부풀어 있다. 전씨의 큰 아들 새들(12)이는 동갑내기 배씨 아들 형진(12)이와 함께 산과 들을 뛰어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 "올해가 내가 태어난 양띠 해잖아요. 여기저기 양처럼 돌아디니며 자연의 힘을 배울 거예요."

물론 이들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힘 닿는 대로 남을 도우면서 특히 가장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갈등을 줄이는 데 애쓰자고 뜻을 모았다. "고향이 다른 우리가 함께 지내다 보니 다를 게 하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걸 느낍니다."

세 가족은 모두 이날 저녁 전주시내로 나가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 참석, 저마다의 소망도 촛불에 담았다. 6개월 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모두 붉은 악마가 돼 월드컵 응원에 목청을 높였다. "아프지 않고 모두들 건강해야지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미선, 효순이 누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길 바라요." 가족들의 새해 꿈은 끝없이 이어졌다.

/완주=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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