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癸未)년 찬란한 첫 태양이 4,700만 겨레의 희망을 담아 힘차게 솟아올랐다. 말띠 해 임오(壬午)년을 숨가쁘게 달렸던 스포츠 스타들은 저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벅찬 기대를 안고 양띠 새해를 맞았다. 축구 최고의 별 박지성(22)과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타자 최희섭(24), 고교생 덩크슈터 하승진(18)은 2003년 그라운드와 코트를 뜨겁게 달굴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다. 지구촌을 포효할 이들 3인은 거친 도전과 시련을 딛고 환희와 감동의 드라마를 엮어내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패배는 있지만 좌절은 없다"는 기대주 3인의 당찬 새해 포부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하승진
"보통 물건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통할 대물(大物)이 나왔다."
국내 최장신 농구선수 하승진(수원 삼일상고2·218㎝)이 한국농구의 숙원인 미 프로농구(NBA) 진출을 벼르고 있다. 수원 팔달산의 모진 바람을 가르며 땀을 쏟고 있는 하승진은 "나를 넘어설 사람은 오직 나"라는 무서운 아이의 면모를 과시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하승진은 손만 뻗쳐도 림(305㎝) 부근에 닿을 정도로 큰 키를 자랑한다. 파워와 높이가 생명인 농구에서 세계와 견줄 만한 높이는 타고 났다. 당장 NBA에 내놓아도 '걸어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휴스턴·226㎝) 등과 함께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농구계는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덩크슛까지 꽂아대는 파워와 테크닉에 주목하며 술렁댄다. 2m가 넘는 장신이 고교무대에만 19명에 달하지만 그는 군계일학이다. 웬만한 대학선수보다 낫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자유투 능력까지 갖춰 세기만 다듬으면 NBA 진출이 문제없다"고 평가한다.
힘이 부족해 미완의 대기에 머물렀던 하승진은 지난 1년 새 대형센터로 급성장했다. 삼일상고는 하승진 덕에 전국대회 4관왕과 함께 22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센터출신 하동기(44·200㎝)씨의 아들인 그는 두팔을 옆으로 벌렸을 때 길이가 224㎝에 달할 정도의 엄청난 팔길이로 경기마다 1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낚아챈다. 한 경기에서 8개의 덩크슛을 폭발시킨 적이 있는 하승진의 높이에 대학 팀이 연습경기서 무너진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그의 진로는 농구계 최대관심사다. 각 대학의 스카우트 표적 0순위인 그를 보고 미국대학농구(NCAA) 관계자들도 군침을 흘린다. 하승진은 그러나 "지금은 운동에만 전념할 뿐"이라며 당장의 진로에 연연치 않는다.
하승진은 다리근력과 스피드를 향상시켜야하는 1차 과제를 안고 있다. 오른쪽 대퇴부 수술 후유증과 거구(130㎏)를 지탱 못하는 무릎 이상으로 고교 1년 때는 한 경기에 절반 정도 밖에 뛰지 못했다. 1년 넘게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온 하승진은 "NBA에서도 버틸 만한 체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수원=글 이왕구기자fab4@hk.co.kr
사진 고영권기자
■박지성
천진난만한 박지성(교토)은 눈빛 만큼은 먹이를 쫓는 사자처럼 날카롭게 번득인다. 박지성은 지난해 네티즌들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멋진 골'과 한국축구를 빛낼 최고 스타의 영광을 차지하는 등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며 더 큰 꿈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굶주려 있다(I am still hungry)"는 히딩크 PSV아인트호벤 감독의 품에 안길 박지성은 2년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빅리그 진출을 장담했다. 소속팀의 일왕배 결승에 나서기 위해 새해 첫날을 일본에서 맞은 박지성은 인터뷰에서 "일단 교토의 별에서 아인트호벤의 별이 되겠다"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
5일 히딩크 감독과 재회하는 박지성은 한일월드컵의 최대 수혜자다. 포르투갈 전에서 터트린 결승골은 한국축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오른쪽 가슴으로 받아 오른발 슛하는 척하다 공중으로 톡 차 수비수를 따돌린 뒤 그대로 왼발로 때린 슛은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뚫고 네트로 빨려들어갔다. 박지성은 이 골로 미완의 대기에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했고 히딩크는 450만달러(54억원)라는 거액을 제시, 네덜란드로 불러들였다.
박지성은 "월드컵에서 세계적 스타들과 경쟁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이제 축구에 눈을 뜬 만큼 누구와 맞붙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인트호벤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뒤 스페인 또는 잉글랜드로 무대를 옮긴다는 세부계획도 짜 놓았다. 태극전사 선후배들이 빅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가교역을 맡겠다는 의지도 남다르다.
"축구가 시원치 않으면 마라톤으로 전향해도 성공하겠다"는 말을 들을 만큼 강한 체력을 타고난 박지성은 "테크닉과 시야를 한단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 눈 팔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땀과 눈물의 결실을 맺겠다"는 그의 다짐에는 '꿈꾸는 자만이 천하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가 녹아있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최희섭
최희섭(시카고 컵스)은 계미년 첫 새벽을 남해바다에서 홀로 맞았다. 1998년 4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건넜던 바다는 희망이었다. 마이너리그서 4년5개월간 무명의 한을 곱씹은 끝에 지난해 9월 시카고의 홈구장 리글리필드에서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밟은 최희섭은 그 바다로 돌아왔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태평양을 건넌 그의 눈에는 이제 단순한 타자가 아닌 슬러거의 야망이 이글거린다.
지난달 23일 경남 남해 야구캠프서 개인훈련을 시작한 최희섭은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망운산에 오른다. 바다가 보이는 망운산의 정기를 한 몸에 받은 뒤 러닝과 캐치볼 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등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희망을 담금질한다.
마이너리거 시절 한번도 조국 땅을 밟지 않았던 최희섭은 새해 첫날에도 광주 고향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줄 떡국을 먹는 즐거움조차 뒤로 한 채 훈련에 매달리는 독기를 보였다. "진정한 프로만이 살아 남는 메이저리그에서 대성하기에는 아직 부족한게 많다. 단지 출발선에 서 있을 뿐"이라며 이를 악문 그를 두고 야구캠프의 구명근 총감독은 "빅리거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카고가 새미 소사 등 쟁쟁한 거포들을 제치고 갓 데뷔한 애송이를 클린업 타선에 배치했을 만큼 그는 미래의 시카고 4번타자 재목으로 꼽힌다. 최희섭은 올 시즌 주전 1루수를 꿰찬 뒤 이를 발판 삼아 신인왕을 꿈꾸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에릭 캐로스 등과 치열한 1루수 주전다툼을 벌여야 한다. 캐로스는 LA 다저스에서 붙박이 1루수로 뛰며 지난해 2할7푼1리(13홈런 포함), 73타점 등을 기록했던 강타자로 수비실력도 만만치 않다. 최희섭은 그러나 "누구를 꺾는 건 중요치 않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생존기법을 터득해 자신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타자의 자산인 좋은 눈을 지키기 위해 인터넷조차 하지 않는 최희섭은 1월 중순 본격적인 팀 훈련에 합류한다. "야구인생을 더욱 살찌우겠다"는 그의 다짐에는 슬러거의 파워가 넘쳐 흘렀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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