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은 대북 인식에서 빠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인식의 변화 조짐은 국민의 기대치와 국제정치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그만큼 심각함을 확인시키는 것이기도 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대북 인식에서는 핵 문제를 '핵 개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26.6%), '핵 개발로 이어져도 안보 위협 아니다'(21.2%)로 보는 낙관적, 이상적 견해가 '대미 협상용이지만 안보 위협 요인이다'(30.1%), '핵 개발로 이어져 심각한 안보 위협 요인이 된다'(14.4%)는 견해보다 오히려 많았다. 이런 낙관적 견해는 바람직한 대북 정책에서 '포용정책 그대로 유지'(28.2%), '포용정책 기조 유지, 속도 조절'(43.2%)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반면 '압박책 병행'(18.0%), '강경 대응'(6.3%)에 등을 돌리게 되는 인식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대선 투표일 직전에 터져 나온 북한 핵 문제가 과거와 달리 특별한 선거 변수가 되지 못했던 이유를 알려 준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이런 인식은 대북 정책 공조가 불가피한 미국, 일본 여론의 위기 의식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어서 새 정부가 미일 양국과의 공조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예고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 들어 한미일 3국이 대북 정책에서 보인 '미묘한 온도차'가 '현격한 견해차'로 더욱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경기 회복에 이어 남북 관계를 새 정부의 두 번째 국정과제로 꼽았다. 북한 핵 문제는 직접적으로, 또는 미국과 일본을 돌아 간접적으로 남북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동시에 대북 정책 기조를 '포용 정책에 따른 대화'에 한정한 국민 의식은 결과적으로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의 폭을 제약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미 인식의 변화도 눈에 띈다. 대미 관계에 대한 기본 인식은 지난해 5월 본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56.4%가 '미국과의 우호관계 유지'를, 42.1%가 '대미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미국과 거리를 두어야'로 응답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주한 미군에 대한 인식에서 긍정적 평가가 여전히 우세한 가운데 존재 자체가 남북 화해에 걸림돌이 된다(14.5%)거나, 한반도 긴장 요인(15.6%)이라는 견해가 전에 없이 강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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