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2003년 한국경제의 앞에는 험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북핵 위기와 이라크 전쟁 가능성 속에 소비침체, 가계 신용불안 등의 숱한 난제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선진국과의 기술적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의 추격으로 세계시장에서의 입지가 날로 좁아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경제가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이 절실하다. 지금의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처럼 10년 뒤에 한국경제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선진경제로 인도할 차세대 유망산업과 기술, 이를 찾기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노력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주
2010년 어느 날 오후 2시30분, 대한민국 서울의 한 대기업 사무실. 두 아이를 둔 주부인 이 회사 영업부 차장 서모(42)씨의 휴대 단말기에 한 유통업체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방금 댁의 냉장고가 쇠고기 2㎏, 우유 1,750쭬, 사과 2㎏을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승인하시겠습니까?" 서씨는 "벌써 냉장고 재고가 떨어졌나"라고 놀라며 단말기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결제' 버튼을 눌러 주문을 승인하고, 물품 대금을 지불했다.
오후 5시30분, 서씨가 퇴근하려고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휴대 단말기에서 "사무실에 서류가방을 두고 왔습니다"는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서씨는 "이크, 오늘 집에서 처리해야 할 서류를 두고 왔네"라며 가방을 챙기기 위해 자동차 문을 다시 열었다.
차세대 디지털 시대를 지배할 '유비쿼터스'(Ubiquitous) 혁명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인 '유비쿼터스'의 의미가 말해주듯 유비쿼터스 혁명은 네트워크망이 고도로 진화해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로도 정보를 주고 받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컴퓨터, 개인휴대단말기(PDA), 휴대폰 같은 통신기기는 물론이고 전자적으로 작동하는 모든 기기, 심지어 서류가방에까지 집적회로(IC) 칩이 내장돼 정보교환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 유망산업으로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홈 오토메이션 분야는 유비쿼터스 혁명의 초기 진화단계. 지난해 첨단 주거형태로 각광을 받은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경우 '홈 오토메이션' 서비스에 따라 011이나 017 가입자들은 휴대폰이나 PDA로 집밖에서도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가스밸브 등을 제어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휴대폰 전문업체인 팬택& 큐리텔도 유비쿼터스 혁명을 현실화할 단말기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 박창진 상무보는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휴대폰과 PC가 통합될 것이라는 전제에 따라 PC기능을 갖춘 휴대폰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경제침체 속에서도 IT분야의 앞선 기술과 투자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우리 경제는 이제 유비쿼터스 혁명을 주도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초고속인터넷망을 토대로 유비쿼터스 혁명이 가능한 차세대 정보 네트워크(High Speed U-Computing & Networking·HSUC& N)를 구축할 경우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최소 500조원의 국내총생산(GDP) 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홍동표 연구위원은 "정부의 IT산업 육성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97년부터 2001년까지 IT부문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규모가 270조원에 달한다"며 "한국 경제는 최소 2010년까지는 주요한 성장동력의 하나인 IT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이성국 소장은 유비쿼터스 혁명을 위한 과감한 정부 정책을 주문했다. 이 소장은 "정부는 2007년까지 전국에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U-코리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유비쿼터스(U) 혁명이란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도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어디에나 있는) 혁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존 통신망과 단말기, 가전기기 등의 전면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또 이 과정에서 막대한 국내총생산(GDP) 유발 효과가 나타나고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제고된다.
초보적 수준의 유비쿼터스 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업자를 연결하는 기간 통신망은 지금보다 1만배, 단말기는 처리속도가 지금보다 10배 이상 빨라져야 한다. 국내에서 '유비쿼터스 혁명'을 처음 제안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현재 초당 1기가바이트 수준인 기간 통신망의 전송속도가 1만배 이상인 초당 1테라바이트로 늘어나야 한다.
전문가들은 유비쿼터스 환경이 구축되면 국민들의 삶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기기는 물론이고 자동차, 가방과 심지어 변기 등에 초소형 칩이 내장돼 개인별 최적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냉장고가 음식물 유통기한이 지났음을 자동으로 알려주거나, 저녁 찬거리가 부족할 때는 스스로 슈퍼마켓에 택배 주문을 내는 일도 가능해 진다.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이성국 소장은 "유비쿼터스 혁명은 결국 사회시스템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며, 따라서 사회체계 전반에 대한 재구축이 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선진국 동향
1998년 미국 제록스(Xerox)사의 연구원인 마크 와이저(Mark Weiser)가 세계 최초로 '유비쿼터스 혁명'을 주장한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선진 각국의 정부와 대기업들은 '유비쿼터스 혁명'을 대세로 인정하고 이미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유비쿼터스 기술 중 가장 혁신적인 것은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추진하는 '스마트 먼지'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자율적 센싱과 통신이 가능한 시스템을 장착했으면서도 부피가 먼지 수준인 1㎥에 불과한 '실리콘 모트(Silicon mote)'를 개발, 공기 중에 다량으로 살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요컨대 수십억개의 실리콘 모트를 지구 상의 공기에 살포한 뒤 기상상태, 생화학적 오염은 물론 유사시에는 적국의 동태와 병력·장비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사라지는 컴퓨팅(Disappearing Computing)'이란 이름으로 유비쿼터스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16개 연구 프로젝트로 나눠 진행하고 있는데, IT기술을 일상 사물 및 환경에 보이지 않게 통합시켜 인간 생활을 지원하는 게 궁극적 목표이다.
한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IT수준이 뒤쳐진 일본은 2002년 6월30일 총무성 주관으로 민간, 대학의 전문 연구인력을 모두 참여시킨 '유비쿼터스 포럼'을 발족했다. 일본 정부는 2005년까지 초보적인 '유비쿼터스 혁명'을 실현시켜 한국과의 격차 축소는 물론 오히려 단숨에 한국을 뛰어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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