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올 해는 나라 안팎의 갈등과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고, 양(洋)처럼 온순하고 화합하는 밝고 환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어두운 곳에는 빛을, 소외된 곳에는 사랑을, 땀이 있는 곳에는 결실이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보통 한국인'들로부터 새해의 희망찬 다짐을 들어본다. /편집자주독도 경비대장 백민욱 경위
"국토의 최동단에서 힘차게 솟아 오르는 조국의 태양을 가장 먼저 바라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경북지방경찰청 울릉경비대 독도경비대장 백민욱(白旻郁·23) 경위는 "경비대원 모두 대한민국의 동쪽 땅끝을 지키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근무 중"이라며 "독도 사수에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고 힘찬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경찰대를 졸업하고 독도에 첫 부임한 그는 "대원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께서는 안심하셔도 된다"며 새해 인사를 전했다.
백 경위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지만 평소에는 막연히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만 여기는 것 같다"면서 "국민 모두 독도의 지리적,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만 일본이 더 이상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소장
" 우리 안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으로 나아가는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1992년부터 안산 원곡본동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처를 보듬어 온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박천응(朴天應·43) 목사는 "주민들이 이제 손으로 밥을 먹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미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3년전부터 해온 '국경없는 마을' 추진위원회의 활동을 설명했다.
유엔에서 협약이 체결돼 오랜 바람이었던 고용허가제 도입을 눈 앞에 둔 올 해의 목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 "막연한 장기 체류자들의 실질적인 정착을 위해서 돈을 어떻게 벌고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 자립을 도와야 합니다. 이들이 침입자가 아닌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도 알려야 하구요." 현재 직장인 자원봉사자들이 주말에 시간을 쪼개 운영하고 있는 한글학교, 컴퓨터교실, 진료·법률상담센터 등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박은형기자
월드컵 코리안서포터즈 문상주 회장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한중일 축구대회에서도 월드컵대회에 이어 국가 브랜드를 한단계 높일 겁니다."
월드컵 코리안서포터즈 문상주(文尙株·56) 회장은 올해 3대 목표로 5월 대구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 세계대회 지원, 11월 한중일 축구대회(제주 예정) 지원, 직능인 권익향상을 제시했다. 지난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어낸 코리안서포터즈의 저력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한국직능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음식업, 학원업, 미용업, 안마업 등 국내 경제인구의 95%를 차지하는 1,300만 직능인의 권익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선진국 유명업체들이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국내에 들어와 토종 직능인을 위협하고 있다"는 그는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국회에 계류중인 '직능인 경제활동에 관한 지원법' 통과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마지막 연탄배달부 현병옥씨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 한 리어커를 끌어야지요. "
연탄배달부 현병옥(玄炳玉·82·동대문구 전농1동)씨는 새벽부터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매달고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연탄 100장을 실은 리어커를 맏딸 희녀씨가 뒤에서 밀고 있다.
지난 가을 전농1동에 소방도로가 들어서며 인근의 낡은 집도 모두 헐려버려 주문이 부쩍 줄었다. 3월이면 연탄값이 16원이 더 오른다지만 이미 이문동에 있던 7개 연탄공장 중 삼천리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우릴 찾지 않으니 더 을씨년스러운 겨울입니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 이도화씨는 관절염으로 지난해부터 일을 그만두었다.
고혈압 증세로 성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찬 바람을 뚫고 길을 나서는 82세의 노인은 "추위에 떨고 있는 독거노인들은 모두 수십년된 단골 손님"이라며 "마지막까지 내 할 일을 다하고 가야지요"라며 함박 웃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어린이 판소리꾼 이성현군
"올해에는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판소리 '심청가' 완창은 이성현(8·서울광장초등학교 2년)군이 올해 넘어야 할 산이다. '심청가' 완창은 장장 4시간이 걸리며 A4용지 90쪽 분량의 사설을 통째로 외워야 한다. 전문 소리꾼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을 올해 만8세인 이군이 완창하면 '국내 최연소 심청가 완창'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이군은 하루 4시간 이상씩 소리에 매달릴 계획이다.
공연 예정일은 11월 중순. 틈만나면 거울 앞에서 도포와 망건 차림으로 연습에 열중한다. 어머니 이복순(33)씨는 "한번도 판소리를 강요해 본 적이 없다"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군은 지난달 '홍보가'를 3시간만에 완창했다. 1남1녀의 막내인 이군은 세살 때 어머니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들렀다가 처음 판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사설의 내용을 그대로 기억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민주기자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
"시화호를 찾는 동물들에게도 변함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2년 '올해의 환경인'으로 선정된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崔鍾仁·48)씨는 '동물들의 새해 바람'에 더 신경을 썼다. 1994년 시화호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 물고기 떼죽음 등으로 '죽음의 호수'로 불렸던 시화호에 바닷물이 다시 들어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자 수만 마리의 철새와 너구리, 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됐다.
최씨는 매주 서너차례씩 주변 123㎞의 시화호를 돌며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백로, 국제 보호조인 검은머리 진달래 등 시화호를 찾는 각종 철새들에 대한 밀렵감시에도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그는 "며칠 전에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를 건너다가 크게 다쳐 대수술을 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10년여년간 직장을 팽개치고 시화호를 지켰던 최씨는 98년부터 경기 안산시청에서 조수보호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여성 경찰간부 김경원 경위
"밤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도, 선불금에 매여 삶을 괴로움으로 채워가는 여성도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픈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더라도 무섭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내기 경찰간부 김경원(金炅元 24·충남 공주경찰서 조사계장) 경위는 "7개월에 불과한 현장경험이지만 아직 우리사회에는 따스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범죄의 어둠을 걷어내는 사회의 등불이 되겠다"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 일을 즐기는 사람 중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는 "경찰 입문 첫 해를 어떻게 보낸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힘겨웠다"면서 "하지만 나의 일과 직업에 애정을 듬뿍 담아 최선을 다한다면 언제나 뿌듯하고 보람될 것"이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송두영기자
전북시각장애인 도서관 송경태 관장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겠습니다."
전북시각장애인 도서관 송경태(宋京泰·42·1급 시각장애인) 관장은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만이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인다"고 각오를 밝혔다. 등반 전문가인 송 관장은 안내견 '찬미' 등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세계 두번째)의 기록에 도전하겠다며 새해 초부터 설악산 훈련에 참가한다.
남북통일 염원과 불우 국가 유공자를 돕기 위해 2002년 8월 목포-임진강 구간 518㎞ 국토종단 대장정을 펼쳤던 그는 또 "북측의 허가만 받으면 판문점-신의주 600㎞ 평화도보행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1982년 군복무 중 수류탄 폭발사고로 장애인이 된 송 관장은 1999년 월드컵 성공기원 미국대륙 도보 횡단과 2000년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 등정, 2001년 캐나다 록키산맥 치프봉 암벽등반 등을 이뤄냈다.
/전주=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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