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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13)델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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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13)델리스파이스

입력
200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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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가요계에는 이른바 모던 록이 유행했다. 몇 년 전 크랜베리스, 라디오헤드 같은 유럽 밴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한 음악이었다. 모던 록은 60,70년대는 물론 80년대의 헤비 메탈과도 궤를 달리했다. 이제 록은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사회를 향한 저항의 외침은 청춘의 웅얼거림으로 바뀌었다. 96년 주주클럽이 '16/20'이, 이듬해에는 자우림이 '헤이 헤이 헤이'로 인기를 끌었다.97년 데뷔한 델리스파이스는 한국의 모던 록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이 아닌, 새로운 생각과 감성으로 말 그대로 모던한 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델리스파이스는 95년 김민규(31·기타)가 PC통신에 올린 "U2와 R.E.M 같은 음악을 하려 한다"는 광고로 결성되었다. 김민규는 "U2와 R.E.M은 멜로디가 좋았고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밴드라 예로 들었다"고 한다. 광고를 보고 이승기(26·키보드) 윤준호(32·베이스) 최재혁(27·드럼)이 모였고 이승기를 제외한 세 사람은 지금까지 함께다. 윤준호는 "모던 록을 하겠다고 모인 건 아니다. 우린 그냥 록 밴드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과 태도는 분명 이전까지의 밴드들과는 달랐다. 완벽한 사운드, 훈련으로 다져진 탁월한 연주력, 심지어 듣는 이를 휘어잡는 강한 보컬도 없었다. 내세울 건 오직 멜로디와 노랫말뿐이었다.

데뷔곡 '차우차우'는 전통적인 록의 관점에서 보자면 멜로디가 너무 예쁘고 보컬은 힘이 없었다. 곡 구성은 지극히 단순했다. 중국 개 종자인 차우차우라는 제목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만이 반복되는 노랫말 역시 구세대 록 밴드나 몇 년 앞서 출발한 홍대 앞 인디 밴드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김민규는 "주위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에 울적해진 어느날 만든 노래"라고 한다.

김민규의 말대로 델리스파이스는 가요계와 인디 양쪽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가요치고는 너무 새로웠고 인디 치고는 너무 약했다. 하지만 델리스파이스는 굳이 어느 쪽에도 끼려고 애쓰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고전적인 록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코드가 같은 사람이 좋아하면 족하다"는 최재혁의 말처럼 이들은 그 음악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델리스파이스와 같은 코드를 지닌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천편일률적인 댄스에도, 지나치게 과격한 인디 음악에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20대 대학생이 주였다. 그들은 슬픔과 홀가분함이 뒤섞인 경쾌하고 맛깔스런 멜로디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을 좋아했다.

실제 델리 스파이스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영감을 얻은 지난해의 '뚜삐뚜빠띠'처럼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노랫말의 소재를 찾곤 한다. 덕분에 또래의 영상세대는 '차우차우'를 떠난 사람, 잃어버린 것을 그리는 노래로도 받아들였다.

델리스파이스는 또 한국적 록이냐 외국 록의 충실한 재연이냐의 오랜 이분법에서도 자유로왔다. "중요한 건 자기화겠죠. 자기화만 잘된다면 어느 쪽도 관계없다고 생각해요." 윤준호의 주장이다. 모던 록 역시 델리스파이스의 자기화를 통해 튼튼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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