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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당신의 ♡ 보여주세요"

입력
200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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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톤으로 바꾸면 동그라미가 몇 개 없어지지?" "3개요!"27일 오후6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만난 '마가렛의 집' 공부방. 임정희(49·여)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초등학교 3학년 8명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어둠을 쫓았다. 아이들은 2평 남짓한 비좁은 방안에서 움직일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지만 공부삼매경에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문만 열면 매정하게 쏟아지는 추위 때문에 두꺼운 잠바도 벗지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이 곳은 어느 곳 보다도 따뜻한 공간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소중한 교육 공간인 '방과후 공부방'이 관심과 지원 부족으로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서울시에만 7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비인가 시설이란 이유로 실태파악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랑의 씨튼수녀회가 운영하는 마가렛의 집 공부방은 수녀 2명과 유급교사 2명, 몇 명의 자원봉사자가 50여명의 달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운영비는 유급 교사 월급 1인 당 55만원 등 300여 만원이 들지만 시가 지원하는 돈은 급식비 50만원이 전부다.

오영숙 원장수녀는 "아이들을 위해 유급교사를 많이 모시고 싶지만 능력이 안된다. 최근엔 자원봉사자 구하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번 겨울엔 운영비 마련을 위해 멀리 강경과 간성에서 사온 젖갈과 황태를 판매했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손수 만들어 팔았지만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서울 구로구 구로3동의 파랑새 나눔터 공부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상가건물을 개조해 만든 이 곳엔 40여명의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책가방을 놓을 곳도 마땅치 않지만 기다란 밥상에 쪼그려 앉은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네 쪽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 곳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아파 찡그리는 아이, 머리에 바글거리는 이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 돌보는 사람이 없어 목욕도 못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살가운 가족이고 엄마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까지 지어주기 때문에 이곳의 운영비는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문숙영(35·여)교사는 "현재는 모든 게 부족해 동네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다"며 속상해 했다.

서울 성북구 삼선1동사무소에 토요일마다 차려지는 '비둘기 공부방'은 그나마 전문 교사도 없이 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다. 자원봉사자인 장공임(48·여)씨가 사비를 들여 결식아동을 위한 밑반찬 봉사에서 알게 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다. 공부방 자원봉사자들은 "정부는 민간이 운영하고 있는 공부방에 교사 인건비도 보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시설 기준, 서류 심사 등 형식에 얽매인 법제화는 자칫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는 기존의 공부방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글·사진=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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