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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시니어]이정수씨 전국일주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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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시니어]이정수씨 전국일주 도전기

입력
200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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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오지까지 연결하는 거미줄 도로망과 뻥뻥 뚫린 8차선 도로 덕분에 이제 전국일주는 주말 일정으로도 가능한 나들이가 됐다. 그러나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토를 한바퀴 도는 3,000리 길은 신발을 여러 켤레 준비해야 하는 대장정이었다. 20대에 한번쯤 꿈꾸었을 '걸어서 국토일주'를 60대가 돼 도전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오기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정수(66)씨가 올 3월 도보 국토순례에 나섰던 것은 '꿈을 이루는 데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집이 있는 전주에서 출발, 남도를 빙 둘러 서울까지 잇는 전국 2,200리 길을 걷는 데 걸린 시간은 딱 한 달. 전주에서 순창, 담양, 광주, 화순, 순천식으로 전국의 도·시·군청 소재지를 연결하는 식으로 행로를 잡았다. 세끼 식대와 여관비로 사용한 하루 경비는 5만원 안팎으로 총 여행경비는 150만원 가량. 무리없이 걷기 위해 정한 목표가 하루 5시간, 20㎞ 정도였으나 실제로는 하루에 7시간, 30㎞ 가까이 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순조로웠다.

출발 전부터 '노인네가 길에서 병이라도 얻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주위의 만류와 걱정, 스스로도 '정말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막상 길을 나서면서도 '목표달성'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평소 등산을 통해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데다 때마침 봄 기운으로 흐드러지는 풍경 때문에 고단함을 이길 수 있었다.

그가 여행에서 길잡이로 삼은 것은 지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때의 추억이나 고단한 삶을 쓰다듬어 준 사람들의 얼굴이 그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안내했다. 밀양을 지날 때는 '밀양박씨'로만 불려졌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논두렁에 꼼틀대며 돋아나는 새 순을 보고는 어린 시절 농사일을 거들던 일이 되살아났다. 원주에서는 20대 초반에 사귀었던 애인 생각에 저절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그가 이번 순례에서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문경새재 7㎞ 길. 포장도 안 되고, 다니는 차도 없는 고개길에, 벚꽃으로 눈이 부신 길을 걸으면서 '어얼쑤∼' 장단이 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길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발이 부르트고 길에서 사먹은 음식이 탈을 일으키는 등 편안한 여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달 동안 2,200리를 걷고 난 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집에 있을 때면 소화가 안 되고 식욕도 없었으나 매일 30㎞씩 걷다 보니, 밥 맛이 꿀 맛이었다.

잘 닦인 도로, 편리해진 교통편을 두고 2,200리 길을 걸어서 완주한 뒤 또 한번 우직스럽게 '우리 땅 걸어서 삼천리'를 펴낸 그는 "걸어서 국토를 한 바퀴 순례하는 과정에서 60여년간 걸어온 나의 인생역정을 꼼꼼히 뒤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버스나 기차로 하는 여행이었다면 떠오를 겨를도 없었을 인생의 작은 추억들과 만나는 여행이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과 같이, 내 인생의 평범한 순간들도 보석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노년을 즐겁게 살기 위해 '지나간 일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철칙도 이 여행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젊은 시절 전북매일 전북도민일보 호남매일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그는 현재 '인터넷전북신문'을 운영하며 전북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발췌해 인터넷사이트에 올리는 일을 한다. 직장동료, 일로 엮어진 인간관계 대신 메일 동무, 산에서 만난 친구들로 새로운 관계를 엮어가는 등 그는 동년배에 비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노년을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또 다른 목적이죠."

그는 "나이든 사람에게는 아무 때나,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걷기 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말한다.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일은 젊은이의 몫만은 아니다'는 깨달음도 이번 여행의 수확이다. "누구나 한 달 정도의 시간을 털어 도보 국토순례를 해 보세요. 현실에 체념하지 말고 한 발짝 내딛는다면 노년의 고통도 비켜갈 것입니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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