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문화유산헌장 제1조다. 원칙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개별 사안에서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올 한해도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심 등으로 훼손되는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문화재 동네의 화두였다.경주 석굴암 유물전시관 건립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올 초 문화재청이 석굴암 100여m 아래에 실물 모형을 포함한 유물전시관을 짓겠다는 불국사의 계획을 승인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가 반대모임을 결성, 범국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문화재청은 내년 1월 중 문화재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재논의하기로 한 상태. 그러나 석굴암 훼손 방지와 관람객 편의 제공을 위해 전시관 건립을 강행하겠다는 불국사 측과, 전시관이 꼭 필요하다면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 한다는 반대모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성 백제의 왕성임이 확실시되는 서울 풍납토성에서도 유실됐던 서벽 터 일부와 해자 흔적이 확인되면서 유적 전체에 대한 체계적 발굴과 보존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일단 유실된 성벽과 해자 추정 지역을 매입, 보존키로 하고 기획예산처와 예산 협의중이다. 경주 감은사터 동탑의 부재 탈락, 도굴꾼에 의한 경기 여주 고달사지 부도 훼손 등이 이어지면서 당국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국정감사에서 석가탑 다보탑 등 국보급 탑들이 기울어졌다는 지적이 나와 충격을 던졌으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가운데 시민의 자발적인 문화재 보존 운동이 첫 결실을 맺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11월 헐릴 뻔했던 고 최순우 선생의 집을 사들여 내년 6월 기념관을 열기로 했다.
분단 이후 첫 북한 문화재 전시로 남북 문화재 교류의 물꼬를 튼 것도 값진 성과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로 12월 6일 COEX에서 개막, 내년 3월까지 열리는 '고구려! ― 평양에서 온 고분벽화와 유물' 특별전에는 북한의 국보 4점을 포함한 유물 등 300여 점이 선보였다. 그러나 10월 황해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분벽화 사진을 일본 학자의 소개로 접해야 했고, 개성공단 개발에 따른 문화재 공동조사가 북한의 거부로 무산된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 문화재 교류도 활발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국보 문화재를 교환 전시한 '한국 명보전'(3∼7월·도쿄 오사카)과 '일본미술 명품전'(5∼7월·서울). 10∼12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본 근대미술품 70여 점이 사상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다.
크고 작은 발굴 성과도 이어졌다. 전북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는 3차례 발굴조사에서 고려청자 3,000여 점이 인양됐고,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6세기 신라시대 관직명 등이 적힌 목간 65점이 발견됐다. 경기 파주 파평 윤씨 묘역에서는 문정왕후 친정 증손녀로 추정되는 여인이 출산 도중 숨진 지 400여 년만에 반(半)미라 상태로 발굴돼 관심을 모았다.
무형문화재 분야에서는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무속인 김금화씨, 국립국악원 등이 9월 파리축제를 비롯한 국제 행사에 초대돼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한 반면, 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선정을 둘러싸고 상호 비방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아 씁쓸함을 남겼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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