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국가들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축출을 추진하고 있다. 후세인 제거라는 미국의 전쟁 명분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수없이 민간인이 죽어나가고 유전 등 기간시설이 파괴되는 등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후세인 떠나라"
AP 통신은 29일 아랍 지도자들이 이라크전을 막기 위해 후세인에게 퇴진 후 제3국으로 망명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망명처로는 이집트, 리비아, 쿠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카타르가 이달 초 긴급 아랍 정상회의를 제의한 것도 후세인 망명 설득에 대한 아랍권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교도(共同)통신도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해 온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아랍 각국에 후세인 망명 계획을 제안했으며 시리아, 알제리, 모로코 등의 동의를 얻었다고 24일 보도한 바 있다. 사우드 알 파이잘 사우디 아라비아 외무장관은 "중동 지도자들은 후세인에게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해 아랍권이 모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후세인은 중동의 시한폭탄?
아랍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역안정이라는 실리를 선택한 결정이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으로 끊임 없이 미국을 자극해 온 후세인은 현실적으로 중동의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 유엔의 무기사찰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라크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아랍권의 우려가 최고조에 달한 상태이다.
한 아랍 외교관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전쟁을 통해 제거하려는 것은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후세인이다. 따라서 전쟁을 피하려면 골칫거리인 후세인을 추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얼마 전 PBS 방송에 나와 이디 아민 우간다 전 대통령, 장 클로드 뒤발리에 아이티 전 대통령 등 추방된 독재자들을 거론하면서 "후세인이 국외 망명을 택할 경우 전쟁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후세인이 수용할까?
아랍국들은 후세인에게 가족 및 측근 동행, 재산 유지, 신변 보호 등 당근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독재자 후세인이 자진 퇴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후세인의 전 공보비서관인 사바 살만은 "후세인은 망명보다는 자결을 택할 것"이라고 퇴진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라크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8월 후세인은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이 퇴진을 거론한 것에 격분해 이라크 주재 카타르 외교관들을 모두 추방하기도 했다.
후세인 망명이라는 정치적 해결이 미국이 원하는 해법도 아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억제, 이라크의 정권 교체 등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후세인의 완전 제거 이후 중동 구도 재편과 이라크의 석유 자원이기 때문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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