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우리 겨울 날씨의 특징인 삼한사온은 사라진 듯 합니다. 하지만 춥고 따뜻하기가 반복되는 주기는 여전한 것 같군요.역설적이게도 가장 모진 계절의 겨울눈 속에는 식물에게 있어서 가장 어리고 연한 조직이 들어 있습니다. 내년에 자랄 부분이지요. 물론 가장 바깥에 아주 단단한 껍질로 철저히 무장하고 있습니다. 추위를 막는 역할입니다. 백목련처럼 연회색빛 털코트를 입은 겨울눈도 있고 물푸레나무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가죽 코트를 입은 겨울눈도 있습니다. 어떤 코트를 입고 있느냐에 따라 나무마다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눈의 모습이나 역할이 모두 다릅니다. 그 중에는 꽃으로 피어날 꽃눈(花芽)도 있고, 잎으로 펼쳐질 잎눈(葉芽)도 있고, 이 모두가 차례 차례 한 눈 속에 들어 있는 눈들도 있습니다.
진달래나 개나리처럼 봄이 오면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꽃나무들은 이미 꽃으로 피워낼 꽃눈의 분화를 마친 상태로 겨울을 납니다. 봄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아주 부지런히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봄의 환희는 준비된 나무들만이 받을 수 있는 계절의 축복입니다. 꽃이 될 눈들을 잘라 보면 모양과 숫자를 다 갖추고 이미 다 만들어진 꽃잎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봄이 오고 나서 서서히 조직을 분화하는 나무들도 있지만 이들의 잎 혹은 꽃들은 이미 지상에 지천인 초록에 묻혀 버리기 십상입니다.
겨울의 어려움을 겪어 낼 겨울눈이 없다면 그 나무는 새 봄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올 한해의 준비 혹은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우리도 새해를 혹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겨울눈은 어려움의 상징인 동시에 희망입니다.
어김없이 한해가 가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옵니다. 따지고 보면 그날과 그날이 크게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겨울날이지만 우리는 해를 바꾸어 의미있는 날로 만들었으며 비로소 지난 일들에 대한 마감과 새로운 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편지를 통해 더듬거리며 찾아보고 싶었던 것들도 겨울눈 속에 혹은 자연의 아주 작은 그 어떤 모습과 현상 속에 감추어진 세상을 살아야 할 이치들이며 그렇게 의미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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