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초 명지학원 유영구 이사장과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이사장은 조선 성종때 학자 최 부(崔 溥) 선생의 '표해록(漂海錄)'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며칠 뒤 읽어보라며 보내왔다. 그는 필사본을 세 질이나 수집할 정도로 이미 표해록에 매료돼 있었다.'표해록'은 어떤 책인가. 일반인들은 흔히 여행기라 하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연상하겠지만 이 분야 전문가들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동방견문록'과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그리고 '표해록'을 3대 기행서에 포함시키고 이 가운데 특히 '표해록'을 으뜸으로 쳤다.
최 부 선생은 성종18년(1487년) 9월 제주에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돼 임무를 수행중, 부친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급히 귀향 배에 오른다. 그를 포함, 40여명이 탄 배는 그러나 폭풍을 만나 표류한다.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오는 가운데 그는 배에 탄 사람들을 위로, 격려해 난파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보름동안 생사의 위기를 겪은 뒤 배는 중국 저장성(浙江省)에 도착한다.
저장성에 도착한 일행은 왜구로 오인돼 박해와 학대를 받고 감옥에도 갇힌다.
베이징(北京)으로 호송된 최 부 선생은 그러나 의연한 기품을 잃지 않고 사정을 잘 설명했다. 배를 함께 탔던 부하들에게도 너무 초라하고 궁핍하게 보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중국 황제는 당당한 그의 자세에 감복, 오히려 상을 내린다.
황제는 상으로 좋은 옷을 하사했는데 그는 상중이라며 상복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를 알현할 때만은 공적인 자리라며 하사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50여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표해록'은 그가 중국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다. 그가 기록한 중국의 수차 농사법은 나중에 조선에서 가뭄극복법으로 이용됐다.
조선의 선비는 나약하고 방관자적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그가 배에서, 중국에서 보인 태도는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려는 행동적 용기가 돋보였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안 나는 그 뒤 소중한 우리 문화 유산을 보전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 몇 년간의 노력끝에 올해 초 통일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나 종 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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