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 선거가 노무현 당선자의 승리로 끝나면서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민주당이 현재의 '원외정당'을 미국식의 원내정당으로 바꾸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데 이어 노무현 당선자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제로 바꾸는 한편 2004년 총선 후 분권적 대통령제를 운영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를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 당내 지도부와 소장파 등 다양한 세력들간의 논쟁과 힘겨루기가 예고되고 있다.그 중 우선 주목할만한 것은 지금까지의 원외정당을 원내정당으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선 막판에 어이없게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선언함으로써 그 동안의 인기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정치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대선 후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낡은 한국의 정당을 현대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즉 현재의 우리 정당은 국회 밖에 있는 거대한 중앙당이 중심이 되어 당 총재가 사무총장을 거느리고 시도지부와 지구당을 지휘하고 있는 원외정당 체제이다. 따라서 거대 조직을 움직이느라고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이 조직을 장악한 당 총재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비민주적 구조를 가져왔다. 반면에 미국식 원내정당의 경우 중앙당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미국의 국회인 의회 내에서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방식이다. 즉 정당의 주요 결정은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당 총재 같은 것이 없고 각 당의 원내총무가 당의 리더로 당을 조율하고 상대 당 원내총무와 협상을 통해 의회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이 같은 원내정당화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제왕적 총재 제도라는 반민주적 정당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개혁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다만 주의할 것은 원내정당화 자체가 돈 안 드는 정치와 정당 민주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원내정당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이 들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중앙당과 지구당 운영비용을 천문학적인 텔레비전 광고 비용이 대체해 버렸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정당이 기본적으로 원내정당이었지만 70년대 당원과 국민이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당내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에서 원내정당 그 자체가 당내 민주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적 상향식 공천이 제도화하지 않는 원내정당화는 오히려 국회를 의원들만의 클럽으로 만드는 퇴행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을 대신할 미디어 비용에 대한 선거공영제 실시와 상향식 공천제도의 의무화 등 보완 조치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 밖에 우리의 실정에서 원내정당을 추진할 경우 두 가지 문제가 크게 우려된다. 그것은 중앙당이 없어짐에 따라 정책을 개발하고 의원들간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정당의 정책적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의원 한명에 배당되는 보좌진의 수나 질 등이 우리와 달리 엄청나게 많고 강하며, 감사원이 국회 산하에 있는 등 중앙당이 없어도 정책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우리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중앙당을 없애기보다는 정책개발 중심으로 재편하거나 국회의 정책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보완적 조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문제는 원내정당이 될 경우 원외지구당은 완전히 찬밥이 되고 말아 정치 신인의 정계 진입이 엄청나게 어려워지고 따라서 기존 정치인에 대한 물갈이와 순환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또 정치 신인도 스스로 정치자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손 호 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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