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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인사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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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인사청탁

입력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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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LG그룹은 오랜 관행을 배격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인사 청탁자 명단공개 제도였다. 누구든 청탁자가 있으면 즉각 보고하라는 구본무 회장 지시가 있은 뒤, 설마설마 하던 분위기가 급전되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 계열사 전무가 그룹 인사팀 관계자에게 친척 아들의 채용을 청탁했다가 회장에게 보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 후 LG그룹에서는 오랜 전통으로 굳어진 임직원 자녀 추천제도까지 자취를 감추었을 정도다.■ 외환위기 직후 취업난이 가중돼 인사청탁이 심해지자, 신규채용과 임직원 인사에서 옥석을 가리기 어렵다고 걱정한 구 회장은 "앞으로 인사청탁을 하는 임직원이 있으면 직접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룹 인사팀은 청탁을 받을 때마다 청탁자 이름과 피청탁자와의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 이를 근거로 한 보고서를 회장실로 올렸다. 이 보고서는 각 계열사에도 공개됐다. 6개월 정도 지난 뒤 인사팀은 "이제 풍토가 바뀌었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 이 사례는 정부 각 부처와 자치단체에 모범적인 참고사례로 채택되었다. 서울시는 즉시 이 제도를 본받아 인사 청탁자 명단공개 방침을 천명했다. 경찰청은 명단공개 정도가 아니라,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고위간부 인사에 청탁이 너무 많아 인사권 행사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했다. 이런 소동을 바라보던 행정자치부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특정학교와 지역 출신자 편중인사 사례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인사권자를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쏘았다.

■ 그러나 그런 방침이 지켜진 일은 없다. 이준 국방부 장관은 지난 8월 취임 1개월을 보내면서 그 동안 10여건의 인사청탁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청탁자는 진급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청탁자를 인사기록 카드에 적어넣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뒤 몇 개월동안 그런 조치가 보도된 일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어제 인사 청탁자는 패가망신을 시키겠다고 말했다. 명단공개나 불이익 처분의 징벌효과가 약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철저히 방침과 약속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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