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한민국이 나를 배신했다"는 말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그는 체류지인 베트남에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외로 도피시킨 재산은 한 푼도 없다"며 "불법 재산도피자로 모는 건 김우중 개인뿐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또 대우의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권의 신흥관료체제 가치관과의 근원적인 갈등의 소산"이라며 "그들은 너무 성급했으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오로지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피와 땀을 흘린 죄 없는 기업을 합리적 절차 없이 부도 처리했다는 항변이다.
한 때 잘 나가던 기업의 총수로서 계열사가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김씨의 안타깝고 억울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기업을 호령하다가 갑자기 해외 떠돌이가 된 처지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권과 유착해 특혜금융과 수출지원 등 온갖 특혜를 다 누렸던 재벌 총수가 이제 와서 배신 운운하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는 1997년부터 3년간 수출대금 조작, 차입금 누락 등의 방식으로 41조여원을 분식회계 처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위 서류로 금융기관에서 10조원을 대출받은 혐의로 대우의 전·현직 임원 등 34명이 지난해 2월 기소돼 옥고를 치렀다. 김우중씨가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3년간이나 귀국을 미루며 검찰 조사를 회피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인터뷰에서 "귀국은 이미 사치가 됐다"고 했지만, 재산 해외도피 의혹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그가 정말 대우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경영인의 자세를 가졌다면 빨리 귀국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귀국의사가 없으면서 언론을 통해 여론의 반응이나 떠보는 것이야 말로 사치스런 행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