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26일 열린 외교안보 관계장관회의는 북한이 핵 개발 해제 선언 이후 취한 일련의 조치들이 한반도에서 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심각한 상황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대외적으로 북미간 갈등이 나날이 첨예화하고, 국내적으로는 정권인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은 기존 노선의 연속성을 담보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다.이날 회의에서 나온 북핵 해법의 키워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다. 이를 위한 방법론은 크게 북한과 미국간의 적극적 중재, 그리고 남북대화 채널을 활용한 대북 직접 설득 등 두 가지로 구체화했다. 1994년 핵 위기 당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방관자로 밀려나 북미간 협상에 사실상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인식은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 노력은 국제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더 악화돼 한반도에 위기가 오는 사태로 이어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북한의 조치들이 미국과 협상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벼랑끝 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갈등 양상이 계속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평화적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는 일단 한·미·일 공조하에 중국 러시아가 적극 나서 북한을 설득해주도록 외교적 노력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과 협의, 노 당선자와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합의한 특사 교환 등을 통해 미국과의 공조도 한층 강화키로 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모든 핵위기가 고조될수록 남북대화 채널은 유용한 것이며, 이에 따라 기존의 남북협력사업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도 정리했다. 그러나 북한의 행동이 하루하루 빠르게 '위험선'에 다가서고 있어 우리의 역할확보 전망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음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임성준(任晟準)외교안보수석이 가진 일문일답.
―사태가 악화하고 있는데 남북관계 속도 조절은 없나.
"지난 10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남북간, 일북간 기존 대화통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남북대화 채널은 계속 유지하면서 문제해결에 임해야 한다."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미국의 생각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미국은 지원하는 쪽으로 한미간에 양해가 됐고 부시 정부에 들어와서도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다."
―남북장관급회담은
"9차 남북장관급회담을 내년 초에 개최키로 한 합의가 지켜질 것으로 본다. 장관급회담을 통해서도 적극적인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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