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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 "해돋이 축제" 충남 서천 마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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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 "해돋이 축제" 충남 서천 마량마을

입력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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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앞바다에 길게 누운 띠섬을 따라 어둔 하늘이 불그레하게 익는다. 23일 오전 6시30분,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서해 끝마을. 바다 김밭으로, 주꾸미 고둥낚시 나가는 어선들의 엔진소리가 비인반도의 잠을 깨운다. 방파제 위에는 어느 새 관광객 수 십여 명이 나와 만을 휘돌아 온 겨울 찬 바람을 맞고 섰다. 반도 들머리, 갯벌 체험관광지로 제법 알려진 '달 아래 별(월하성)'마을 앞바다 물결이 제법 끓는 듯 요동치더니 어느 새 둥실 붉은 불덩이가 솟는다. 일출이다.낚시바늘처럼 매달린 비인반도의 끝자락 마을인 마량리가 해돋이마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 전부터 지구 공전으로 해가 가장 남쪽으로 치우쳐 뜨는 12월과 1월 두 달은 해상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 여느 동해안지역 일출 못지않은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너른 만을 껴안은 형세이니, 해야 늘 그렇게 뜨고 졌겠지만 주민들은 그러려니 했다고 했다. "강원도루만 일출 귀경(구경) 댕기는 게 이상허드만서두, 첨엔 거그 일출은 특별한가 했지유."

그러던 것이 여행객들의 입소문과 매스컴 영향으로 마량 포구마을이 알려지면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한 곳에서 보겠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렸다. "한 마디로 벼락 스타가 된 거죠. 해돋이축제 첫 해(1999년)에만 무려 8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으니까요." 군 문화공보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100여 가구의 어민들이 꽃게 잡고, 김 양식하며 사는 마을에 하룻밤새 그 인파가 자동차를 끌고 들이닥쳤으니 오죽했으랴. "비인반도 전체가 숫제 거대한 주차장이었시유.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그려서 주민들이 질서를 챙기자고 나선기유." 그게 '서면발전위원회'다.

24일 오전 10시 중부발전 서천화력발전소 옆 억새 공터. 삼삼오오 모여 든 주민들이 어느 새 30여명. 누군가 억새밭 귀퉁이를 따라 불을 지피자 10만 여 평에 이르는 마른 억새밭에 길이 열리고 너른 공터가 생겼다. 하지만 워낙 불길이 싸고 가벼운 탓인 듯 억새의 억센 밑둥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초기를 어깨에 맨 10여명의 작업조가 시커멓게 그을린 밑둥 제거작업에 투입됐다. 해맞이 관광객들이 이용할 주차장 조성 작업이다. 이들 모두가 서면발전위 위원들이거나 인근 부락 주민회 회원, 혹은 군·면 관련 공무원들이다. "당번을 정해 제 돈 들여 차 타고 오고, 제 돈으로 밥 먹어가며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곳 주차장에서 해돋이 마을 현장까지는 약 1.5㎞. 올해는 차량의 마을 진입을 전면 통제하는 대신 4대의 셔틀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

축제 프로그램부터 예산 기획에 이르는 모든 절차는 발전위를 주축으로 주민들이 내고 실행하고 있었다. 마을에 무대를 만들어 해질녘부터 해가 뜰 때까지 긴 시간동안 노래자랑 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방파제를 따라 10여 군데 모닥불을 지피고, 그 주변에 고구마를 포대 째 놓아두고 누구든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발전위 김형찬 사무국장은 "주현미나 송대관이를 부르자는 제안도 나왔는데 하도 비싸서 포기했다"며 "여기 업소 가수들도 실력만큼은 별로 안빠진다"고 했다. 행사 당일 주민들이 고장 특산품인 물김을 풀어 끓인 김국을 대접할 참인데, 예산에 여유가 생기면 아예 떡국을 끓여 볼 계획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 역시 농사짓고 고기잡는 어부인 김 국장은 "팔자에 없이 감투를 쓰고 보니 생업보다 이 일이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며 "지금은 김 수확철이라 회원들이 덜 나오지만 평소 일이 있으면 자기 일 제쳐두고 40∼50명씩 모이는 건 예사"라고 했다. 이번 행사에 군에서 지원한 예산은 3,000만원. 실제 투입된 돈은 약 5,000만원이다. 모자라는 돈은 발전위원들의 회비와 서면 24개 부락에서 얼마씩 내고, 여관장사 음식장사 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거들었다. 또 3월과 10월 서면 일대에서 치러진 동백·주꾸미축제와 전어축제 때 고장 특산품 등을 팔아 남긴 기금(약 1,000만원)도 쏟아넣었다.

해돋이 축제가 알려지면서 매년 8만 명 내외가 꾸준히 찾는 덕에 불과 5곳에 불과하던 횟집이 약 30여 곳으로 늘었고, 최근 들어 전문 민박집도 서넛 들어섰다. 하지만 주민들은 해돋이축제로는 소득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차 안에서 쉬다가 일출 보고 되돌아서는 이들이 많고, 먹거리도 대부분 가져오기 때문. "새해 첫 날부터 회 먹겠다는 이가 많남유. 더운 국이나 요깃거리도 무료로 제공하는 터여서 돈 한 푼 안 쓰고 가는 이가 열에 아홉이유."

하지만 이 행사를 통해 고장 인심을 알리겠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다. 그게 가장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올 봄·가을 주꾸미·전어축제때는 행사 기간(약 14일)동안 각각 예년보다 20%가량 늘어난 25만 여명의 관광객이 들렀다. 여름 춘장대 해수욕장(연 입장객 150만명)을 포함해 사계절 관광 고장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 덕에 서면은 서천군 관내 13개 읍면 가운데 주민 수가 줄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60,70년대 15만 명에 이르던 서천군민은 최근 7만 명 남짓으로 격감했고, 최근 4,5년 사이에만 약 1만 명이 인근 대전이나 전주 등 생활권 대도시로 이주한 터였다. 하지만 서면 인구는 수년 째 5,500∼6,000명을 유지하고 있다. 마량리 이장 조광병(趙光炳)씨는 '사람이 그 마을의 힘'이라고 했다.

오후 5시를 넘어서면 비인만 일대는 온통 저녁놀에 잠긴다. 좁다란 곶(串) 마을을 가운데 두고 옹색한 원호를 그리며 떴다 지는 아쉬움 때문일까. 마량 동백숲(천연기념물 169호) 너머로 지는 놀은 서해안에서도 붉고 곱기로 유명하다.

/서천=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choisoo@hk.co.kr

■또하나 명물 "서천해양박물관"

지난 4월 해돋이마을 들머리 언덕 위에 명물이 섰다. 서천 해양박물관(사진 아래)이다. 남도 해안지역 지자체들이 국비,도비 지원 받아 경쟁적으로 세우고 있는 그것들과 달리 이 곳은 순수한 민간시설. 아랫마을 주유소 사장인 이장복(李長馥·42)씨가 주인 겸 관장이다.

어릴 적부터 바다생물 박제나 조개껍질 수집이 취미였다. 10여년 전부터 여유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사 모은 박제나 표본, 희귀 패류가 현재 2,000여종 15만 여 점. 아예 13억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간판을 내건 것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의 관광 구색용으로 여겼다가는 큰 코 다친다. 양으로나 질로나 비공식 국내최대 규모라고 한다. 그가 박물관에 들인 돈은 '원금'만 약 25억원. 직접 번 돈에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보탰다. 10월 격포에서 잡은 9m짜리 '브라이드 고래'를 3,500만원에 경매로 사들여 포항 냉동창고에 보관중이다. 밍크고래, 귀상어, 백상아리, 개복치, 돛새치 등 경북 포항의 냉동창고에 박제 대기중인 것만도 1억5,000만원 어치. 조개 껍데기 하나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황금 개오지, 해로해면동굴 등 희귀 소장품도 특A급으로 상당수 진열돼 있다. 어류 가격보다 박제비용이 2배 이상 비싸, 아예 박제 전문가를 초빙해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는 "1m 내외 작은 녀석들은 직접 박제를 한다"고 말했다.

흙 퍼다 박물관 운영하냐고 묻자, 뜻밖에도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는 대답이다. 어느새 유료관객(9개월간) 20만 명을 돌파했고, 요즘도 주말 하루에만 1,500∼2,000명이 찾는다. 경영이 좀 더 안정되면 어린이 입장료는 안받을 계획이다. 마을 회의가 있다며 일어선 그는 자신의 만년 자가용인 1톤 타이탄 트럭에 몸을 실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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