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전남감독 시절인 1997년 초 전지훈련지 포르투갈에서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시골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인상의 코엘류는 초면인데도 격의 없이 말을 건네는 등 소탈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대표팀을 이끌던 2000년 6월 유럽축구선수권을 참관하면서 코엘류를 다시 볼 기회를 가졌다.
당시 코엘류가 이끈 포르투갈은 한일월드컵 때보다 전력이 훨씬 강했다. 피구, 고메스, 핀투 등 초호화 진용의 포르투갈은 압박과 개인기, 짧은 패스 등이 어우러진 창조적 플레이를 펼치며 4강 무대를 밟았다.
한일월드컵에서 세네갈을 8강에 올려 놓은 브루노 메추 감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 됐다. 치렁치렁한 금발머리의 메추는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1―0으로 물리치면서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는 코엘류의 능력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메추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거스 히딩크의 뒤를 이을 대표팀 감독으로 이들 중 1명이 뽑힌다고 한다. 지명도와 카리스마, 친화력 등을 놓고 인물평이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다. 감독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다. 오히려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력과 낯선 선수들을 빨리 파악해 팀워크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2명으로 압축됐지만 요모조모 잘 따져 더 훌륭한 인물을 뽑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건 한일월드컵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모른다. 온 국민을 사로잡은 6월의 감동은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지금은 한겨울 날씨처럼 싸늘해졌다는 생각이다. 월드컵의 위대함에 놀라 축구 사랑을 외쳤던 정치인들의 목소리도 꼬리를 감춘 지 오래다.
월드컵의 감동을 승화하지 못한 책임은 먼저 축구인들이 져야 한다. 잦은 판정 논란은 팬들을 그라운드에서 쫓아냈다. 신생 프로팀 창단 문제도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월드컵 4강 신화에 안주했지 그 영광을 유지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게 사실이다.
한해를 정리하는 지금 언론은 저마다 한일월드컵을 최고의 스포츠 뉴스로 꼽고 있다. 그러나 한일월드컵은 이제 역사 속에 묻어두자. 4강 타령을 반복하는 것보다 산적한 난제를 해결하면서 미래를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때다.
/전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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