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27일 유신헌법이 발효되며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자신이 군사반란으로 수립한 제3공화국을 스스로 허물고 번호판을 갈아 다시 제4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한 개인이 두 공화국을 거느리는 기록을 세웠다.박정희는 그 해 10월17일 '민족의 지상 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실로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이른바 10월유신을 통해서 유사 파시즘 체제의 시동을 걸었다. 유신헌법은 그 유사 파시즘 체제의 법적 표현이었다. 그 전 해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신민당 후보 김대중(金大中)은 민주공화당 후보 박정희가 재집권하면 총통제를 통해 영구집권을 꾀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는데, 그 예측이 얼추 현실화한 셈이다. 박정희가 확립한 유사 파시즘 체제는 그가 피살된 직후인 1980년의 짤막한 '서울의 봄'에 누그러지는 듯하다가, 전두환(全斗煥)의 5·17 쿠데타 이후 되살아나 1987년 6월 항쟁 때까지 이어졌다.
박정희는 대관식을 거행하지는 않았으나 유신헌법을 통해서 절대 군주나 누릴 법한 권력을 움켜쥐었다. 그의 임기는 6년이었지만, 자신이 의장인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을 통해서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명했고, 국회가 제 맘에 안 들면 언제라도 해산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이 헌법 제53조에 따라 국정 전반에 걸쳐 긴급조치를 할 권한을 손에 넣었는데, 이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법 위의 법'이자 헌법을 능가하는 최고 규범이었다.
정희성(鄭喜成)의 시 '유신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국민 되는 요건은/ 민주공화당이 정한다."
고 종 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