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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상식과 正道를 지켜라

입력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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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뒤에도 눈알 굴리는 소리와 돈 세는 소리가 들린다. 이긴 측은 물론, 진 측의 사람들까지 다음 정부에서 차지할 자리를 찾느라 눈이 벌개졌고 내 돈 돌려달라는 소리, 마지 못해 돈을 다시 꺼내어 세는 소리가 들린다.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향후 5년이 암담해진 사람들이 거덜났다고 탄식하는 소리도 들려 온다.가장 크게 거덜난 사람은 역시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다. 후보 단일화로 박수를 받았던 그는 불과 몇 시간을 못 참고 스스로 복을 차버렸다(무슨 화투를 그렇게 치나). 사려깊지 못했던 점을 뒤늦게 사과했지만 깨끗한 승복으로 땄던 점수는 이미 잃었다.

그의 지지철회 덕분에 노무현 당선자는 DJP연합으로 사사건건 JP의 눈치를 봐야 했던 DJ와 달리 아주 홀가분해졌다. 정씨는 절묘하게 노 당선자를 도운 꼴이 됐다. 대선에 출마하고도 다른 공직을 내놓지 않은 게 그로서는 큰 다행이라 하겠다.

5년 전 경선에 불복, 대선에 출마했었고 올해 민주당 경선에서 중도사퇴한 이인제씨는 결국 민주당을 뛰쳐 나가 제2의 경선불복을 했다(그가 그럴 줄 알았다). 그는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이 되어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는데 이씨가 낙선했으니 이 일을 어쩌랴.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중립을 선언하고도 이인제씨를 내세워 이회창 지지를 하게 했다(오래 전에 거덜난 사람이지만 JP는 역시 노회하다). 그런 그가 노 당선자를 가리켜 '낮의 촛불'이라고 중의적(重義的)으로 한 말씀한 것은 압권이다. 낮에는 잘 안 보이지만 밤이 되면 주위를 밝히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하겠지만, 불필요한 시간에 쓸 데 없이 켜져 있는 빛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낙선한 이회창씨야 얼마나 마음이 아프랴만, 깨끗한 정계 은퇴로 그에게 주어진 몫을 다했다. 오히려 이씨보다는 이씨가 대통령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의 낭패가 심하다. 자기 벼슬을 챙기는 것은 물론,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한 자리를 약속하며 입도선매(立稻先賣)를 한 경우도 있다는 소문인데 이런 변이 있나(그것 참 잘코사니다). 그리고 자당의 후보를 흔들어대며 민주당을 나갔다가 눈치를 보아 복귀한 사람들이 무슨 보디 가드나 측근처럼 당선자 주위를 헤헤거리며 맴도는 모습은 참 가관이며 꼴불견이다(그들은 얼굴도 두껍다). 그들은 드디어 성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이름이 거덜난 것은 마찬가지다. 2004년 총선에서 이런 사람들을 잊지 말고 심판해야 한다. 민주주의사회에서 가장 확실하고 명분있는 인적 청산의 수단으로는 선거 만한 것이 없다.

이번 대선의 여러 가지 메시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식과 정도(正道)를 지키라는 것이다. 뉴턴 이전에는 만유인력이 상식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상식이다.

상식의 내용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상식의 상식성은 변하지 않는다. 노후보 지지를 철회한 정몽준씨는 대리회견에서 배신과 변절이라는 말로 노 당선자를 비난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배신과 변절을 한 셈이 돼버린 정씨에게도 배신과 변절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상식이었던 것이다. 말이 쉽지 상식과 정도를 지키기는 어렵다. 더구나 정치판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처럼 불가능한 주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노력을 해야 그나마 기사회생을 할 수 있고 누추하고 비루하게 거덜난 모습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캠프의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이념을 지지하거나 인간성에 반해 그를 좇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한 자리를 바라고 들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은 큰 도박이었고 이제 생애를 건 도박에 성공했다고 가슴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DJ가 집권했을 때처럼 좋은 자리를 나눠 갖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들에게도 상식과 정도를 지키라는 주문을 해둔다. 임 철 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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