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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눈물 2002스포츠](4)마라톤 영웅 손기정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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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눈물 2002스포츠](4)마라톤 영웅 손기정 별세

입력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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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한국 체육사의 큰 별이 떨어진 해로 기록될 것 같다. 한국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이 11월15일 0시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일제치하이던 1936년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민족의 기개를 떨쳤던 그의 타계는 온 국민을 슬픔에 젖게 했다.손기정은 단순한 마라토너나 체육 지도자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민족에게 뜨거운 희망의 메시지를 준 선각자였다. 1912년 평북 신의주에서 잡화상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손기정은 "돈이 한 푼도 안 들기 때문에" 마라톤을 택한 가난한 식민지 소년이었다. 집 근처 와카타케(若竹)보통학교를 다니면서 달리기를 시작한 그는 1932년 경영(京永)마라톤대회에서 2위를 차지, 명문 양정고보에 진학했다. 이어 1936년 일본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 당시 인간의 한계로 인식되던 2시간30분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일본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는 약소 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2,300만 조선 민중에게 커다란 감격을 선사한 쾌거였다. 하지만 가슴에 일장기를 달았고, 애국가 대신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축하연주로 들어야 했던 한을 그는 평생 잊지 못했다.

"나라를 지닌 민족은 행복하다. 조국 땅 위에서 구김살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해방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던 그는 광복 후 한국 마라톤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도아래 한국 선수들이 47년과 50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했다. 63년부터 2년간 대한육상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육상의 초석을 닦았던 것도 손기정이었다.

손기정이 베를린에서 우승한지 56년 만인 92년 8월9일 바르셀로 나올림픽에서 황영조(32·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는 스탠드에서 굵은 눈물을 쏟았다. 손기정은 당시 황영조를 끌어안고 "네가 나의 한을 풀어주는구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 노환으로 시작된 투병생활 와중에서도 "황영조와 이봉주의 뒤를 이을 차세대 유망주가 없다"며 마지막 호흡이 멈출 때까지 마라톤의 장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는 체육인으로서는 최초로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고,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됐다. "고향 신의주에 가보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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