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과 관련, 감사원이 현대상선에 겨누었던 칼을 슬그머니 거둬 들였다.감사원은 지난달 15일까지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에서 대출자인 산은을 통해 두 차례나 현대상선에 관련 자료 제출을 종용했다. 감사기간에 이종남(李種南) 감사원장도 국회에서 "현대상선에 직접 자료 제출과 답변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대상선이 자료를 내면 대북 지원 의혹 등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대상선이 산은의 요구를 거부하자 감사원은 직접 칼을 빼 들어 현대상선 임직원 3명의 출석과 4,000억원 차입 경위 및 사용내역 관련자료를 11월29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감사원의 정식 자료제출 요구를 거절한 전례가 없다"며 "현대상선도 자료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라고 강한 의욕을 표했다. 물론 거부할 경우 감사원법 위반으로 고발할 수 있다는 엄포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꿈쩍도 하지 않다가 기한을 넘기고야 "자동차 운반선 해외 매각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사유서만 달랑 보냈다. 이후 '채무 조정'을 이유로 12월18일까지 미루더니 최근 또 다른 이유로 내년 1월 말까지 재연기를 요청했다.
뜻밖에 감사원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표정이다. 내년 1∼2월쯤 감사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현대상선에 대한 고발 조치 등을 결정키로 한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직접 감사 대상이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고 이제서야 한 발 빼고 있다.
그 동안 변화라곤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당선된 것뿐이다. 현대상선측이 선거를 틈타 버티기를 해 왔고 감사원은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보면서 이를 용인해주는 꼴이 된 셈이다. 그래서 만일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이 시점 감사원의 태도는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공명정대해야 할 감사원마저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데서 정치권 눈치보기의 단면이 느껴져 씁쓸하다.
이진동 정치부 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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