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증권팀은 올 한해 증시를 결산하면서 펀드매니저와 기관투자가들의 추천을 받아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인 박윤수(42·사진) 상무를 '2002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했다. 박 상무는 올 한해 각종 분석 자료를 통해 한국 증시를 가장 정확히 분석·예측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연말 각 증권 관련 기관이 선정하는 투자전략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혔다. 박센터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2년 한국 증시를 돌아보고, 내년 전망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욕 많이 먹었습니다."
월드컵 성과로 들떠있던 올 7월, 모두가 종합주가지수 1,000돌파라는 장미빛 전망을 외칠 때 그는 '무모하게' "580까지 추락할 것"이라며 향후 장세를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투자자들로부터 당연히 "잔칫집에 재뿌리느냐"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그의 소신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주가가 584.04(10월10일)를 찍으면서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이 달 초 모든 증권사들이 '산타 랠리'에 들떠 있을 때 박상무는 "내년 상반기까지 약세장이 계속될 것"이라며 또다시 '재를 뿌려'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장은 700 아래서 맴돌면서 투자자들은 또 한번 그의 '족집게 전망'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주가 예측 게임의 승자'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자기 편견이 담긴 주장을 고집하기 보다 시장과 기업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결과를 내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를 손가락질하던 투자자들도 이제는 그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저평가'라는 함정에 빠져있습니다. 기업이 제 가치(가격)를 못 받고 있는 만큼 꼭 주가가 올라야만 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죠. 지금은 오히려 달라진 세계 경제 환경 아래서 기업 '이익의 질'을 잘 봐야 합니다." 그는 올해 비교적 정확한 주가예측을 하게 된 배경을 '성장(매출 증가 폭)'에서 찾았다.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이 한국증시 저평가에 따른 대세 상승을 얘기하던 올 5월, 이미 기업들의 매출 증가 폭(신장률)은 낮아지고, 이익 모멘텀은 그만큼 빠지고 있었다. 세계 경기 둔화로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기업 이익을 낮추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차별화·저평가'를 이유로 상승장을 기대했다. 박상무는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익은 질이 낮은 수익이고 이 같은 상태에서 '저평가'는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했다.
"수요가 받쳐 주지 않는 상태에서 기업들은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그만큼 만들어낸 것을 팔아먹는 능력(매출)이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 증시도 이제 지속적인 매출 증가가 주가를 좌우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맞춰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주가예측을 잘못한 것은 올해 미국 경제와 정보기술(IT)경기 회복을 지나치게 낙관 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2003년에 대한 박 상무의 전망은 비록 상반기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둡다. 상반기까지 지수 520∼770에 머무는 약세장을 예측한다. "환율이 불안합니다" 내년 경기의 견인차는 수출인데 미국과 일본이 경기 회복을 위해 달러·엔화 저평가를 고집하는 이상 우리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면에서 거센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수출환경도 그만큼 나빠진다.
PC교체 수요 등 IT경기 사이클이 변수이긴 하지만 세계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섣불리 IT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추가 소득이 생기면 가계 부채를 먼저 갚으려 할 뿐 더 이상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국내 경기 변수로는 노사분규 격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노무현 신 정부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고 기업들이 올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만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입니다." 춘투(春鬪)가 상반기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기업에는 부담이다. 유가 상승도 기업들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1분기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가는 결국 펀더멘털(경제 기초 체력)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박상무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에 살고 있는 만큼 업종이나 테마 중심의 종목 선별보다는 시장지배력이 크고 현금 창출능력이 있는 '1등 기업'에 투자해야 최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POSCO 농심 태평양 등 시장 지배력이 큰 기업은 불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은행들이 또다시 부실투성이 한계 기업에 돈줄을 대 이들 기업이 경쟁에 뛰어든다면 시장은 약세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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