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일설 하나. '평론가가 추천한 영화를 보면 후회한다'. 어떤 관객은 영화평론가들이 혹평한 영화만 골라 본다. 대신 극장 프로그래머는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영화를 선별한다. 흥행 젬병인 평론가와 흥행 감별사 프로그래머가 만나 올 영화계를 정리했다.전찬일- 평론가들에게 흥행 여부를 못 맞춘다고 하는 것은 평론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 페드로알모도바르 감독 영화처럼 전세계 평론가들이 공인하는 영화는 한국에서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렇다고 평론가들이 그의 영화에 별점을 낮게 줄 수는 없다. 몇 년전만 해도 '색즉시공' 같은 영화를 평가하면 매장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달라졌다.
김소희- 평론가들이 관객과 괴리되는 것은 문제이다. 영화의 고유한 성격에 입각, 상업영화라도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관객과 그다지 큰 괴리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평론가가 자신의 스타일과 취향만을 고집한다면 끊임없이 관객과 대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희장- 올해는 관객수는 늘어났으나 스크린 수가 늘면서 극장으로서는 어려운 한 해였다. 극장별로는 관객이 줄었다.
김난숙- 하지만 한국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뢰도는 아직 확고한 것 같다. 외화보다 한국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찬일-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개봉편수가 늘어났지만 5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가문의 영광' 한 편에 불과한 반면, 200만∼300만명 관객이 든 중대박 영화가 늘어났다. 영화 흥행의 갭이 줄어든 게 특징이다. 특히 '색즉시공'은 흥행면에서 기념비적 작품이 될 것이다. 우리 관객은 노골적인 섹스 영화를 기피해왔는데 본격 섹스 코미디가 첫 성공했다.
김소희- 지난해 폭력에 이어 올해는 섹스 코드까지 가미됐다. 하지만 '나쁜 남자' '집으로' '생활의 발견' '오아시스' '복수는 나의 것' 등 주제나 장르면에서 다양한 소수 영화가 많이 나온 긍정적인 한해였다. 그러나 제작환경이 어려워진 올해 상황을 반영, 내년부터는 이런 영화 대신 오락성 강한 장르 영화만을 보게 될까 두렵다.
임현호- CGV극장은 19일로 누적 관객 4,7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서울과 지방에서 복합상영관이 늘면서 내년부터는 극장의 손님 끌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서울의 강변CGV와 강남권은 외화와 소재가 특이하며 작품성이 강한 영화가 흥행이 잘되는 반면 분당 등 위성도시는 가족영화와 평일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성인용 영화가 꽤 잘됐다. 낮시간에 주부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반면 부산이나 광주처럼 지방 도시에서는 조폭이나 액션 영화 관객이 많이 몰린다.
김난숙- 지방 관객수를 보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패밀리'나 '보스상륙작전' 같은 영화는 서울선 흥행에 실패했지만, 지방서 폭발적이었다. 각 지방마다 영화제가 많아도 지방 관객은 여전히 재미를 1순위로 따지는 것 같다.
심희장- 올 최고 히트작은 아무래도 '집으로'가 아닐까. 하지만 '디 아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폰' '색즉시공'의 성공을 보면 관객들이 무언가 '쿨'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제 관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영화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 평론가들의 글은 참고 정도만 하는 것 같다. 관객들, 한마디로 똑똑하고 무섭다.
김소희- 문제는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잡으려면 시장이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야 하는데, 우리 시장은 이게 안 된다. 'YMCA 야구단'이 지지부진한 성적을 낸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임현호- 극장이 가급적 다양하게 영화를 공급하려 하지만 배급사들의 고집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
심희장- 시장 원리가 아니라 패권 논리에 따른 배급 횡포는 심각하다. 이제는 직배의 횡포가 아니라 한국 영화 배급사의 횡포가 더 심한 것 같다.
김소희-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안적 공간을 찾는 활동이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 전국에 산재한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면 좀 더 다양한 관람 문화가 뿌리 내릴 것이다.
/정리=박은주기자 jupe@hk.co.kr
전찬일 김소희 영화평론가
심희장 씨티극장 기획실장
김난숙 동숭아트센터 영상사업팀 팀장
임현호 CGV 프로그래머
■안타까운 이 영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전찬일) 박찬욱의 B급 정서는 인정하면서 이무영의 정서는 이해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영화와 철저히 다르다.
'죽어도 좋아' (김소희) 카메라를 소수에게 돌렸다. 도전적인 영화다. 사랑에 관한 절창이라고 부르고 싶다.
'몬스터 볼' (심희장)잘 만든 미국 영화다. 같은 배급사의 다른 영화 '가문의 영광'에 관객이 몰리자 배급사가 서둘러 종영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김난숙) 어려운 얘기를 코엔 형제가 쉽고 재치있게 풀었다. 하이퍼텍나다에서 단관개봉해 관객이 적었다. 3개관 정도에서 개봉했어도 관객이 더 찾았을 것.
'슈팅 라이크 배컴' (임현호) 사회적 약자를 경쾌하게 다룬 영화를 부천 영화제에서 보고 감동. 상영관도 배려했으나 흥행 참패.
■흥행 북가사의
'집으로' (전찬일) 좀 다른 종류의 재미를 준 영화. 그러나 관객이 폭발할 것으로는 예상치 못했다. 앞으로 관객들이 이런 예외적 선택을 자주했으면.
'가문의 영광'(김소희) 한 두 가지 매력 포인트는 있었으나 역시 흥행이 놀랍다. 김정은의 망가지는 연기와 '가족' 관계를 도입한 것이 흥행의 비법이었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심희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기가 유치원생부터 40대까지 폭넓게 퍼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엄마 찾기라는 확실한 소재 때문?
'후아유' (김난숙) '접속'과 비슷하고, 배우도 약했지만 완성도가 있어 선방할 것으로 기대했다. '기획영화의 냄새가 너무 났다'는 지적이 일리있는 것 같다.
'4발가락'(임현호) 지방 관객 호응이 컸다. 영화를 너무 서울 관객 취향으로만 고르는 게 아닌가, 프로그래머로서 반성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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