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5년은 향후 우리 경제의 장기적 명운을 가를만한 분수령의 시기다. 대외적으로 중국의 급부상 등 세계경제지도가 급변하고 있고, 국내적으로 보수와 진보세력의 갈등이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 다툼으로 이어져 성장정체냐 재도약이냐 여부를 가를 중차대한 시기가 될 게 분명하다. 이럴수록 경제정책에서 일관된 원칙과 중심잡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노무현경제가 교과서처럼 지켜야 할 것들을 5회에 걸쳐 제시한다. /편집자 주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관치(官治)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로 본격 진입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틀이 공정하게 기능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현 정부가 5년전 출범 당시 경제정책의 교본으로 삼았던 'DJ노믹스'의 한 부분이다. 외환위기 직후, 과거 관치경제의 폐해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시장경제의 정착'은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의 '관치경제 청산'에 대한 평가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틀은 어느 정도 갖췄으나,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상황논리를 명분으로 금융시장 등 몇몇 분야에서는 관치의 폐해가 오히려 심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차기 정부는 이 같은 관치경제의 잔재를 뿌리뽑아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가 밀어주는' 선진 시장경제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무현 당선자가 공약한 '7% 성장론'과 같은 지속적 고도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언오(李彦五)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새 정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대표적 관치 사례로 꼽히는 '빅딜'(기업간 대규모 사업교환)은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장 기능을 무시한 무리한 정책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빅딜의 산물인 하이닉스의 경우 현 정부 임기 내 처리여부가 불투명해 차기 정부에까지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외환위기 이후 주요 은행들이 사실상 국유화하면서 금융부문의 정부 개입은 거의 노골적이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대우채 환매제한 등의 사례는 정부의 상황논리에도 불구하고 특정업체 지원을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다고는 하지만, 현대건설 등 몇몇 기업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시장논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병주 (金秉柱)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료들이 오랜 관치의 타성에 젖어 플레이메이커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플레이어로 끼어 들려고 하는 게 문제"라며 "정부소유 은행 지분을 조속히 처분해 완전 민영화함으로써 개입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은행의 가계대출 억제와 대출금리 인상 과정에서도 관치 시비가 불거졌다. 지난해부터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로 소비와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던 정부는 올 들어 집값 폭등과 가계대출 부실 위험성이 높아지자 강제로 대출을 억눌렀다. 급기야 가계신용 위기가 오고 내수가 급랭하는 등 시장과 시장주체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면서 지금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주의는 시장의 자연치유기능과 달리 큰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겨 악순환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폭등한 집값과 부실화한 가계빚은 차기 정부의 경제운용에 또하나의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주식시장이 침체다 싶으면 매번 대증적인 부양책을 내놓는 관행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 증시안정기금 조성론에다, 걸핏하면 내놓는 세금우대 상품도 모자라 지난해 9·11테러 직후에는 투자손실 보전 상품까지 추진하는 미숙함을 보였다. 1985년 이후 정부가 내놓은 증시 부양책이 무려 40여차례나 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하지만 주가지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1,0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으면 주가지수가 2,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대통령(당선자)의 지나친 관심이 정부의 시장간섭으로 이어져 역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진정한 의미의 민간 주도 시장경제로 나가려면 관료들의 의식전환과 함께 근본적인 정부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외치며 2차례 조직개편을 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97년 '2원14부14청25위원회'이던 정부조직은 현재 '18부4처16청35위원회'로 늘어났다. 나성린(羅城麟)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조직의 슬림화와 함께 민간의 우수인력을 공직에 적극 기용하는 인사의 개방성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폐쇄적인 인사제도와 보수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당선자측은 정부조직 개편을 후순위 과제로 미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료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당장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뒤로 미룰 수만은 없는 과제이다. 정부의 불필요한 시장개입과 규제를 없애는 지름길은 정부의 조직을 진정으로 '작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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