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다음 날 필자는 학술회의 참석 차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본 신문을 읽었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대통령선거 결과를 3, 4면에 걸쳐 자세히 싣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신문들은 한국에서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등장했다면서, 앞으로의 한미일 관계가 걱정된다는 식으로 쓰고 있었다.이 같은 우려는 미국쪽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을 통해 보니 미국의 유력 신문들은 사설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권 등장은 '미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한 신문은 노무현 당선자는 미국과 북한이 갈등관계에 놓일 때 어느 한쪽 편, 즉 미국편을 분명히 들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보수세력들은 한국의 노무현 정권 등장에 대해 상당히 긴장하는 듯하다. 그것은 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이전의 정치인들보다 다소 자주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정통성이 없는 정권들은 외부에서 힘을 빌리기 위해 이들 나라에 사대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민주화 이후 상황은 서서히 변화하여 21세기 한국의 첫 대통령 당선자는 자연스럽게 자주적인 입장을 표명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에게는 이것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앞으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우려의 소리는 국내에서도 못지않은 것 같다. 그 동안 한국을 이끌어온 주역이었다고 자부하는 엘리트들은 "철없는 젊은이들이 일을 저지른 것"이라면서 혀를 차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광복 이후 한국의 정치사는 불행하게도 너무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길을 걸어왔다. 광복 이후 거의 30년 동안 민간독재, 군사정권 시기가 계속되면서 정통성 없는 정치세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였다. 1992년 이후의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도 사실은 군사정권 참여자들과 타협한 위에서 성립한 것이었고, 따라서 온전한 의미의 민주정권 수립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군사정권 참여자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인 힘으로 탄생하였다. 한국의 민주화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과도기를 거쳐 비로소 온전한 정통성을 지닌 노무현 정권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또 광복 이후 한국의 정치사는 친일, 사대, 변신, 변절, 부정, 부패, 술수에 뛰어난 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갑부로서 도평의원을 지낸 이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공화당 정권에서는 그의 아들이 국회의원을 세습하여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지역의 토호가 됨으로써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식이었다. 이 같은 현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여 온 것이 우리의 현대사였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서서히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는 그러한 도전이 처음으로 승리한 일대 사건이었다. 즉 '불의와 부정의 정치'에 대해 '정의와 정도(正道)의 정치'가 비로소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당선자는 가까스로 이겼을 뿐이다. 그를 견제하는 기득권 세력은 아직도 막강하며, 이들은 끊임없이 새 정권의 개혁정책에 도전할 것이다. 이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새 정권은 원칙과 정도 위에서 자신의 기반을 끊임없이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우리가 보았듯이 새 정권이 원칙과 정도를 걸으면서 개혁을 추진한다면 다수 국민은 이를 지지할 것이다.
한국인은 이미 과거의 한국인이 아니다. 스스로가 역사를 만드는 주체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 같은 국민과 함께 한다면 새 정권은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역사를 일보 전진시키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박 찬 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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