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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세밑, 당신은 무얼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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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세밑, 당신은 무얼 기억하나요

입력
200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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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입니다. '스토커'의 주인공 로빈 윌리엄스식으로 말하자면 왜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우리가 평생 실물로 본 적이 없는 산타클로스나 전나무로 꾸민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것만 그려져 있을까요. 신년연하장에는 절경들만 가득하고. 그건 나쁜 기억을 떨어 버리고 예쁘고 좋은 장면으로 지난 한 해를 기억하라는 일종의 배려일지도 모릅니다.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유지하고, 다시 복구해내는 이 3단계를 기억이라 부릅니다.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해마(海馬)가 기억을 관장한다지요. 스웨덴의 생물학자 히덴은 어둠의 공포를 심하게 느꼈던 쥐에게서 추출한 RNA를 보통 쥐에 주사하니 그 쥐 역시 심각한 공포를 나타냈다며 기억이 RNA 어딘가에 있는 기물질의 한 종류임을 증명한 적도 있습니다.

연휴기간의 TV 영화 단골 메뉴인 '토탈 리콜'에서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가짜 아내 샤론 스톤을 소중한 사랑으로 생각하는 것도 바로 기억 속에 그녀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면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만 먼 훗날, 기억을 이식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면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겠지요.

나쁘게 기억하자면, 올해는 배반 배신의 한 해였습니다. 곽경택감독과 배우 유오성, 명필름과 김혜수는 오랜 친분이 무너진 한 해였고,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가 '산골 소녀 영자'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관객의 좋은 기억에 흠집을 냈습니다.

이런 시비에 골머리를 앓기에는 남은 며칠이 꽤 아까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며칠 동안, 기억을 재구성해 보십시오. 엄밀히 말하면 기억 조작입니다.

아직 미혼이라면 든든한 오빠나 누나가 '조폭형 큐피트'가 되는 '가문의 영광' 버전으로 기억을 재구성해 보십시오. 늘 고개를 땅에 떨어뜨리고 다니는 타입이라면, '오버 더 레인보우'를 기억하세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랑이 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사춘기이거나 성인이지만 성적으로는 여전히 억압된 당신이라면, '몽정기'나 '색즉시공' 버전으로 기억을 조합해 보면 리비도가 해방의 노래를 부를지 압니까. 이젠 무릎이 시큰거리는 중년이라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죽어도 좋아'는 살아 있다면 사랑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영화로도 기억이 조작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저예산 다큐멘터리를 한 편 찍는 것입니다. 소소하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당신의 일상이 내년쯤엔 멋진 추억이 될지도 모릅니다. 기억하는 순간, 추억이 시작됩니다. 새해 행복하세요.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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