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앞으로 한참동안 가요 사상 최악의 해로 불릴 지 모른다. 잇단 악재가 숨 돌릴 틈도 없이 터져 나오면서 음반 시장은 끝간데 없이 침체됐다.한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99년 이후 처음으로 밀리언 셀러가 나오지 않았고, 50만장 이상도 쿨 왁스 보아 코요태 4장에 불과했다. 가장 많이 팔린 쿨의 7집이 64만장. 음반은 시장의 활황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신인의 '대박'도 겨우 20만장을 넘긴 휘성이 최고였다.
시작은 5월부터 시작된 월드컵 열기.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쏠리면서 음반판매는 급감했다. 월드컵으로 스타가 된 윤도현 밴드의 '라이브 2' 등 몇몇 음반을 제외하면 시장 전체가 꽁꽁 얼어 붙었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음반 출시를 월드컵 이후로 미뤘다.
그러나 7월 초 이른바 연예계 비리사건이 터졌다. 검찰이 "음반업계의 구조를 바꾸겠다"며 가요 기획사와 방송사 PD사이의 공공연한 관행이던 PR비에 칼날을 들이댔다.
기획사 간부들은 국내외로 잠적했고, 몇몇 이들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음반 출시는 다시 중단되었다. 수사는 두 달 가까이 이어졌고 몇몇 기획사 간부와 방송국 PD가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당초 검찰의 장담과는 달리 별 소득이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같은 달 9일 수원지방법원은 음반산업협회가 제출한 소리바다 사용중지 가처분신청을 받아 들였다. '무료 다운로드가 음반시장을 죽인다'는 음반업계에 대해 네티즌들은 '인터넷의 정보 공유'를 주장하며 맞섰고 음반 불매 움직임까지 일었다.
결국 소리바다는 소리바다2로 운영되고 있고, 소리바다와 유사한 사이트들에 대한 단속은 지지 부진하고 있다.
침체한 시장과는 달리 큰 사건이 많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중음악의 사회 참여는 전에 없이 높았다.
2월에는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미국의 오노 파문이 일자 윤민석이 인터넷에 띄운 '퍼킹 U.S.A.'가 입에서 입으로 옮아갔다. 수십만이 운집한 월드컵 거리유세에서 대중을 결집시키고 분위기를 띄운 것도 가수들이었다. 붉은 악마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는 국민가요가 됐고, 윤도현 밴드는 단숨에 열정의 한국, 젊은 세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1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 시위에서도 이정현 싸이 등 가수들이 앞장섰고, 12월 대선 때도 신해철이 노무현의 선거방송 라디오를 진행하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록 밴드의 인기는 이런 모든 현상의 표현으로 읽힌다. 몇 년 전부터 댄스가 퇴조하고 20대가 핵심 소비자로 떠오르면서, 록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음악으로 이어졌다는 것. 또 라이브를 중시해 방송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음악이라는 것도 한 몫 했다.
윤도현 밴드 외에 재결합한 부활이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고, 개성 있는 음악을 하는 크라잉 넛, 자우림, 불독 맨션, 롤러 코스터와 신인 밴드 체리 필터, 트랜스 픽션까지 전에 없이 두터운 층을 형성했다.
80년대 말 이후 변방으로 밀려났다 돌아온 듯한 록과 밴드 음악. 그동안의 기형적 구조가 제자리를 잡는다고 보기에는 시기 상조라는 의견도 많지만, 잇단 악재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2003년의 가요에 희망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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