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적 영향력과는 별도로 당 서열만으로 보면 민주당의 제1인자가 아닌 평 당원일 뿐이다. 노 당선자는 민주당 당헌에 따라 앞으로도 임기 5년 동안 총재나 대표 등, 당의 최고 지위를 겸할 수 없게 돼 있다. 과거 당의 총재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총재직을 유지하면서 여당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던 때와는 기본 토대가 다르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때로 요란한 선전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한번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당(黨)·정(政) 분리'라는 정치적 실험이 최초로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이번 대선 결과가 가져 올 정치적 변화의 폭과 파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출발점이다.노 당선자가 여당의 1인자를 겸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히 여권 내부의 권력 분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남대 김용복(金容福·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로서 자신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여당을 통해 국회를 좌지우지하던 것이 최근까지의 정치 현실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때문에 진정한 당·정 분리는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과도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서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행정부와 국회의 정상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정 분리를 통해 국회의 권능이 회복되고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가 재정립되면 그에 따라 자연히 대립과 정쟁 일변도였던 기존의 여야 관계도 자율적 타협이 가능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당·정 분리가 이러한 영역들을 모두 포괄하면서 우리 정치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 당선자의 결단이 임기 말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또 아니다. 김용복 교수는 "여당이 여당으로서의 독점적 지위와 특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통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국회의 권능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된다"면서 "야당도 여야 대립을 능사로 아는 기존의 정치 관행에서 탈피, 내부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모처럼 맞은 기회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대선 이후 민주당내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당 개혁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당·정 분리의 정신을 살려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당헌상 공직인사 공천은 상향식 방법에 의하도록 돼 있어 제도적으로 노 당선자가 당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현저히 축소돼 있다.
뿐만 아니라 노 당선자는 2004년 17대 총선 결과에 따라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고 공약했고 당선된 이후에도 이 공약이 지켜질 것임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노 당선자의 이 공약이 국회의 다수당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에 의한 국회의 자율적 기능을 보장하는 당·정 분리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2004년 총선을 전후해 헌법 개정 논의가 활발해질 경우, 당·정 분리가 실천돼 온 과정의 시행착오들이 자연스럽게 이 논의 과정에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노 당선자의 결단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당·정 분리가 기대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인하대 김용호(金容浩·정치학) 교수는 "우리 정당이 한번도 자율성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기존 정당의 자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당·정 분리의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정당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도록 원내 중심의 정당으로 개편돼야 하고 자유투표(크로스보팅) 허용 등 각 의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한다.
국회의 자율성 회복과는 별도로 국회의 입법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용호 교수는 "국회가 행정부에서 제안한 법률을 통과시키는 데서 탈피, 실질적으로 입법 기능을 회복해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면서 "국회의 입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인적·물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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