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핵연료를 중수로에 장전·재가동하고, 밀폐보관중인 폐연료봉을 꺼내 핵무기 제조 과정에 진입할 수도 있다. 부시 정부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알 카에다, 이라크, 북한과 3중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이러한 위기는 왜 발생했는가? 직접적 원인은 북한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했다는 미 국무부 켈리 차관보의 발언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북미기본합의 등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중유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부시 정부가 기본합의를 사실상 폐기했기 때문에 핵동결 의무를 준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또는 그에 대한 북한의 시인)의 실체는 모호하다. 한반도를 절멸시킬 수 있는 사안이 모호한 실체를 둘러싼 설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양측의 공식 발언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미국의 입장. "북한은 핵무기 생산을 위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보유를 시인했다. 북한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핵무기를 생산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찾고 있다는 점이고, 이는 NPT 등의 위반"이다. 북한의 입장. "미국 특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우라늄농축 계획을 추진하여 조미기본합의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이 시인한 이상 그대로 넘어갈 수 없으며,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2000년 양국이 합의한대로 미국의 자신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거둬야 하며 그러한 의지를 법적으로 표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불안 속의 관망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북미관계가 파국을 피하고, 한반도를 전쟁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모호성이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중용도기술(dual-use technology)이므로 현재 상태에서 핵무기화할 수 있는 개연성이 얼마나 있는지, 추정 규모는 어떤지 등을 밝혀야 대안이 마련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이 시인했다고 하지만 북한은 NCND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에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북미는 실용주의적 일괄타결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의 대안은 부시 정부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를 원하는 북한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3국이 주도하는) 관련 국제회의에 미국이 참석하여 대북 불가침을 '사실상' 선언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어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사찰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카터 정부 이래 미국이 지켜온 약속, 즉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을 침략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핵 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극적 안전보장(NSA) 약속을 현재완료 시제로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느끼는 체제 위기감을 해소시켜야 한다. 행위 주체들은 본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부시 정부는 미국의 이익이 북한 길들이기보다는 위험 제거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엄격한 법리주의보다는 유연한 실용주의를 택해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기회와 시간을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옳거나 옳지않거나, 좋거나 싫거나, 그것이 현시점 한반도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박 건 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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