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계획 시인으로 촉발된 북한 핵 파문이 결국 유엔의 개입과 미국의 군사적 제재 검토로까지 치달았던 1993∼4년 핵위기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이대로 평행선을 달린다면 북 핵 사태는 내년 1월6일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긴급 이사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국제 문제화할 전망이다.또 북한이 핵 감시체계를 복원하는 등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 핵 문제는 과거처럼 유엔 안보리에 넘겨질 게 확실해 보인다. 미국은 24일 안보리 상정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관련국과의 논의에 들어갔다. IAEA가 안전조치협정 등 4개 국제협정 위반 사실을 보고하면, 안보리는 93년 4월8일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촉구했듯이 1월 중에 비슷한 수준의 의장성명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94년 핵위기 처럼 파국 일보 전에 극적으로 반전, 타협을 도출할 지는 불투명하다. 향후 사태 전개는 전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현 위기가 여러 측면에서 더 상황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IAEA의 요구에 불응하면서 폐연료봉 재처리를 강행하는 등 강수를 둔다면 유엔은 촉구가 아니라 바로 규탄→제재 등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게 될 전망이다. IAEA가 단독적으로 대북 기술협력 중단 등 제재를 결정할 수도 있다.
더욱이 이번 핵 위기는 미국이 냉전 종식 직후 포용과 봉쇄 사이에서 고민하던 상태가 아니라 확고한 의지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이라크 핵 사찰 결의가 채택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유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훨씬 더 강화한 상태다. 90년대에 끝까지 중립을 유지하며 미국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던 중국도 이번에는 북한의 모험을 내놓고 편을 들 입장이 아니다.
따라서 1년3개월 동안 IAEA가 무려 5차례에 걸쳐 대북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가 3차례의 의장성명과 1차례의 결의안을 내놓으며 지루한 신경전을 펼쳤던 94년 위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유엔이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제재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유엔은 이라크의 경우처럼 공격 예고를 담은 결의안을 단번에 채택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동의가 필요할 뿐더러, 무엇보다 남한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등 강경 드라이브를 걸수록 남한과 주변국의 대화 지향적 입지는 줄어든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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