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수만명의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대는 23일 밤 국영 석유회사(PDVSA) 본사를 포위한 가운데 촛불을 들고 깃발을 흔들면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크리스마스 휴전 제의를 거절한 반 차베스 세력은 24일 자정 주전자와 프라이팬 등을 동원한 소음 시위를 벌이는 등 크리스마스 기간에도 새로운 시위 계획을 준비했다.
반 차베스 세력들은 정부가 파업에 참여한 PDVSA의 이사진과 종업원 90여명을 전격 해고했으며 100명에 가까운 유조선 승무원들을 불법 감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차베스 대통령은 23일 파업근로자들에게 사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다.
총파업이 24일째로 접어들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총파업으로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생산량이 하루 300만 배럴에서 30만 배럴 이하로 떨어지면서 국제유가는 이라크 전쟁 분위기 고조와 맞물려 한때 2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연일 급등세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절망상태다. 알리 로드리게스 PDVSA 사장은 석유생산 중단으로 13억달러 이상의 손실이 초래됐다고 밝혔다. 철도·도로 등 기간산업과 주요 생산시설 등이 올스톱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4월 쿠데타와 역쿠데타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극적으로 권좌에 다시 복귀하는 등 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던 차베스 대통령이지만 이번 총파업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이후 총파업은 이번이 네번째.
그러나 이번 총파업만큼은 차베스 대통령의 거취가 명확해지지 않는 한 진정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차베스가 사임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파업지도부의 강경한 태도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파업 참가자들은 2000년 대선에서 빈곤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된 차베스 대통령이 잘못된 좌파 정책으로 경제를 몰락시켰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노동자연맹을 어용노조로 대체하려다 노동계와 산업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데 이어 PDVSA 경영진에 대한 정실인사 단행으로 군부는 물론 종교계까지 등을 돌리게 하는 자충수를 뒀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무고한 양민학살이라고 공개 비난하는 등 줄곧 반미입장을 드러내면서 미국은 물론 국제 외교 사회에서도 고립을 자초했다.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한 차베스의 경제정책은 세계은행으로부터 잘못된 정책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바 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조기 대선 실시 여부에 달려있다. 반 차베스 세력은 지금 당장이라도 조기 대선을 실시, 실정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도 적대 세력간 선거 일정 합의만이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차베스 대통령을 은근히 압박 중이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 측은 내년 8월 국민투표 이전에는 어떤 선거도 실시할 수 없다는 벼랑끝 전술로 임하고 있어 극한대결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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