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광기와 편견의 역사 앞에서 그저 "하느님은 뭘 하는지"라고 탄식할 뿐이다.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 같은 구세주는 더 이상 없다. 죽음 아니면 '소피의 선택'처럼 자녀 가운데서 살려줄 아이를 골라야 하는, 죽음보다 가혹한 선택만 있을 뿐이다.폴란드의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는 죽음 앞에 선 인간들의 살아남기와 끔찍한 죽음, 그리고 선택에 관한 기록이다. 그 기록이야말로 살아남은 자의 몫이자 책임이다. 아직도 그날의 비극을 잊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입을 통해 죽은 자의 비극까지 알아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폴란드의 한 천재 피아니스트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1939년부터 소련군이 진주하기까지 5년 동안 바르샤바 유대인 강제거주구역 게토에 숨어 있었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그의 생존을 위한 처절하고 비참한 몸부림과 그가 목격한 죽음의 현장은 이전 수많은 생존자와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날 나치군대가 진주하면서, 방송국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던 그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진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강제이주, 가차없는 폭력과 약탈과 살육, 죽음 앞에서 동족을 팔아먹는 '기생충이 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간들, 그런 지옥 속에서도 작은 캐러멜 하나를 사서 여섯 식구가 나눠먹고는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오르는 스필만의 가족,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며 소리없이 절규하는 스필만.
게토에서 살아남은 폴란스키 감독은 어린 시절 기억을 재생하듯 그날 그곳의 모습들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펼쳐보인다. 휠체어에 탄 유대인 노인을 4층 발코니에서 던져버리고, 아무 이유없이 지나가는 강제노역 무리를 세워놓고는 무작위로 몇 명을 골라내 머리에 권총을 쏘는 나치를 증언한다.
나치 고발이 다는 아니다. 죽음 앞에서도 장사를 하는 소년을 통해 돈만 밝히는 동족을 비판하기도 하고, 미약하지만 저항세력을 키우는 친구와 늘 겁 먹은 채 살아 남기에 급급한 주인공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스필만을 도와주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그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인간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묘사와 대비야말로 '피아니스트'를 유대인 감독의 한풀이식 고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앞에 앉힌다. 나치 장교(토마스 크레슈만)에게 발각돼 그 앞에서 연주를 하는 스필만.
처음에는 오직 살아 남기 위해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사의 두려움을 잊은 채 피아니스트로서 그토록 원하던 건반을 열정적으로 두드리는 스필만에게서 독일 장교도, 관객도 인간의 진정한 존재 이유와 가치를 발견한다.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피아니스트'는 실존 인물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1988)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다. 동생과의 갈등, 가족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고 주인공의 은신생활이 지나치게 긴 것은 감독의 말처럼 재미보다는 "우리가 겪었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생생한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길 원했기 때문"은 아닐까. 1월1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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