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USA 투데이지는 2002년이 할리우드 여성 영화의 새 전기를 마련한 한 해였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남성지배가 확연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올해의 여성 영화들이 새로운 여배우 스타를 만들어내고 다면화된 여성캐릭터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여성 관객층을 이끌어내는 등 고무적인 한 해 였다고 분석했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여성스타의 약진이다. 톰 크루즈나 톰 행크스등에 맞설 배우로는 줄리아 로버츠 밖에 없었으나 올해 '금발이 너무해' '스위트 홈 앨라바마'의 리즈 위더스푼은 출연료 2,000만달러선을 넘으며 수퍼스타가 됐다. '맨해튼의 하녀'(사진)에서 새 가능성을 보여준 제니퍼 로페즈, 007영화에서 액션연기를 시도한 할리 베리, '언페이스풀'로 아역배우에서 성인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다이안 레인, '프렌즈'의 화려한 도시처녀에서 진지하고 소박한 새 모습을 보여준 '착한 여자'의 제니퍼 애니스턴 역시 스타들의 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올 독립영화계의 최대 사건인 '마이 빅 팻 그릭 웨딩'은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영화로도 빅 히트를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낸 영화로 꼽는다. 예쁘지도 않고 뚱뚱한 여자의 결혼과정을 그려낸 코미디는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 친구와 남편을 데리고 반복관람을 하는데 힘입어 8개월동안 2억 달러가 넘는 흥행기록을 올렸다.
여성영화의 달라진 모습은 흥행성을 갖췄다는 데만 있지 않다. 올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성들은 지극한 모성애나 고난을 헤쳐나가는 강인한 여성 혹은 희생자 등 지난 시대의 긍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상처받기 쉽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해 하는 여성들이다. 제니퍼 애니스턴의 영화 '착한 여자'는 의지와는 달리 불륜에 빠져서 힘들어 하는 여성 주인공을 윤리적으로 재단하거나 성적 쾌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30대의 이유없는 불안함과 절망감을 코믹감각을 곁들여 그려냄으로써 동세대 여성의 박수를 받았다. 평론가들로부터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힌 '러블리 앤 어메이징' 역시 신경질적이고 직업이 없어 불안한 30대 여주인공과 그의 엄마 및 여동생까지 인생의 중심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내세워 기존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들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사실적이고 다면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30대 이상의 인생경험이 많은 여자 관객들을 새 관객층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여성영화가 남성영화와, 혹은 여배우와 남자 배우가 평등한 대우를 받기에는 아직 먼 길이 남아있다. 일단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남성호르몬으로 가득찬 영화들보다 훨씬 싸게 제작된다.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디 아워스'는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 같은 쟁쟁한 배우 세 명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예산은 2,000만 달러다. 보통 5,000만 달러가 넘는 남성영화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다. 일급 여배우들과 남자배우들과의 출연료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소니콜럼비아 등 빅 스튜디오의 사장 자리를 여자들이 거머쥐고 있고 나날이 여성 시나리오 작가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할리우드의 남성 지배문화를 뚫는 데는 아직도 여성들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재미영화프로듀서·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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