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25일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아내 엘레나와 함께 특별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즉시 처형됐다. 이들 부부의 시신 사진은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돼 그 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과응보로 해석됐다. 수십 년 철권통치를 젖혀놓더라도, 차우셰스쿠의 발포 명령을 받은 루마니아 보안군은 그 해 12월17일 티미소아라시(市)의 거리를 반정부 시위대의 피로 붉게 물들였다.외국인들에게 20세기 루마니아의 긍정적 이미지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그 나라 출신 문필가들의 이름과 관련돼 있을 것이다.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게오르규, 종교학자 미르차 엘리아데,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에세이스트 에밀 시오랑, 사회학자 뤼시앵 골드만 같은 사람들이 그 문필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낸 빛도 차우셰스쿠가 만든 어둠을 말끔히 걷어내지 못했다. 차우셰스쿠의 전제 정치를 통해서 루마니아는 영국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로 유명하게 된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다시 얻게 되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18년생이다. 10대 후반부터 공산주의 운동에 발을 들여놓으며 감옥엘 드나들었다. 그가 감옥에서 게오르게 게오르규데지라는 공산당 지도자를 알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차우셰스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루마니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게오르규데지의 뒷배로 당과 정부에서 승승장구했고, 1965년 게오르규데지가 사망하자 그를 이어 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그 뒤 민중 봉기로 물러나기까지 24년 동안 차우셰스쿠는 자신에 대한 개인 숭배를 강요하고 아내를 비롯한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며 동유럽에서도 두드러진 전제적 통치를 펼쳤다.
고 종 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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