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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대]연쇄대담 (4·끝)경제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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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대]연쇄대담 (4·끝)경제분야

입력
2002.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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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승 희 한국경제연구원장조 윤 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거시경제정책

좌승희= 이번 대선은 이전과 달리 경제가 회복 기조에 있어 경제정책이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공약은 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고 '7% 경제성장론' 등 일부 추가적인 공약 몇 가지만 눈에 띕니다. 새 정부의 경제 운용 방향은 현 정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윤제= 비슷한 생각입니다. '노무현 당선'의 의미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라고 생각됩니다. 캐치프레이즈도 '낡은 정치 청산' 이었고, 시대적 요구도 정치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경제에 대해 큰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요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5년간의 개혁과 구조조정 작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좌승희= 새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이 1% 늘어날 때마다 7만명 가량의 고용을 창출한다고 보고 '7% 경제 성장'을 통해 5년간 25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 경제환경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7% 성장은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성장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자칫 무리한 경기 부양으로 경제 불안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조윤제= 고성장은 좋은 것 아닙니까. 향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고성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저축률이 하락하는 현실을 방치할 경우 향후 성장이 유지되는 기간은 길어야 10∼15년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7% 성장을 위해서는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잠재력을 높이지 않고 무리한 성장을 추구하면 인플레이션, 분배구조 왜곡 등 부작용이 생깁니다. 선거 공약에서는 잠재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제부터 잠재력을 높이는 실천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합니다.

좌승희= 큰 목표는 정해진 만큼 구체적인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야당의 정강과 공약도 살펴보고, 기업들과 대화도 해야 합니다. 재벌은 안되고 중소기업은 된다는 식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조윤제= 무엇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 시급합니다. 재벌을 도덕적으로 매도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시키지 말고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책을 펴나감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큰 틀로 보면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은 환란이후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을 통해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졌다고 봅니다.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면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야 합니다. 현 정부 4대 개혁 중 미흡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공공·노동 분야 개혁을 보완해가면서 교육, 법률서비스, 국토개발 등 사회 전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대 도입해 가야 합니다.

좌승희= 지난 5년간 금융, 기업 개혁은 상당 부분 진척됐습니다. 이제 금융은 제대로 상업 금융 역할을 하고 있고 기업도 지배구조 개선, 회계 투명성 강화 등 외형적 장치를 갖췄습니다. 향후 5년은 금융, 기업 부문에 도입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하면서 공공, 노동 부문은 추가로 개혁하는 기간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윤제= 과거 고성장 시대 개발 패러다임은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과 리스크(위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은 열심히 앞만 보고 뛰면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성장의 동력을 끌어낸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도입되면서 정부, 금융, 기업간에 차단벽이 형성돼 지난 30년간 추구해 온 성장 모델에 더 이상 안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입지 등을 고려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의 정착을 중국, 일본 등 주변 경쟁국 보다 더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노동 부문에 법질서를 확립하고 유연성을 확대해야 하며, 공공이나 법률서비스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생산성 혁신이 필요합니다.

좌승희= 민간과 정부가 유기적으로 교류하면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도 잠재력을 높이는데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기업에서는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을 채용하기가 겁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윤제= 우리 경제가 직면한 두가지의 환경 변화로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지식기반 사회로의 진행을 꼽습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정치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현 공교육에 대한 개혁 없이 향후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국가경제의 생존 차원에서 인식하고 정부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벌·노동 정책

좌승희= 경제는 실용성이 중요합니다. 형식에 치우치면 기업개혁을 망칩니다. 재벌이든 기업이든 벤처든 높은 생산성을 내면 됩니다. '재벌은 안되고 중소기업은 된다'는 식의 형식적 규제는 반대합니다. IMF 체제 이후 30대 기업 중 17개 기업의 소유구조가 바뀌었습니다. 실패한 경영진이 퇴출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지만 실제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걸러지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조윤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계속돼야 합니다. 향후 장기 자본시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기업 투명성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재벌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브랜드와 직결되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내부 모순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는 유지하되 신규 투자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는 식의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재계가 도입에 반대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역시 시행되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좌승희= 산업의 변화가 빠르게, 그리고 복합적으로 진행되면서 출자는 기업의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의욕을 출자총액제한제라는 규제로 꺾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집단소송제 역시 선진국 제도를 유행처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히는 소액주주에 한해 권리를 주는 식의 대안이 필요합니다.

조윤제= 노사 문제는 법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불법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관성 있는 원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최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비정규직 비율 상승 등에 따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정리해고 규정을 완화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좌승희= 노사 문제는 정리(情理)나 인정(人情)으로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노조가 당선자의 경제철학에 동조한다 해도 이해관계에 어긋나는 사안이라면 반대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봅니다. 반드시 법치를 확립해야 합니다.

■경제 현안

조윤제= 최근 2년간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향후 경제 운용에 큰 부담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에 육박하는 등 미국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상환능력으로 보면 선진국보다 훨씬 과도한 수준입니다. 가계부채에 대한 금융 감독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 해법입니다. 특히 국토개발, 지역발전을 부문별 이슈가 아닌 경제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적 과제로 해결해야 합니다.

좌승희= 현재 금융 당국을 통한 가계부채 억제 대책은 합리적이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를 1∼2년내 해소하겠다고 한다면 급속한 자산가치 디플레 등의 위기를 부를 수 있습니다. 장기 전략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부동산 문제는 모든 부동산 거래자가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느낌을 받는 분위기를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획기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신도시 개발 등을 통해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병행돼야 합니다.

조윤제= 세제 개편은 보유 과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물론 한 순간에 세금을 대폭 늘리는 것은 반발을 부르는 만큼 차근차근 진행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시급히 방향을 정해야 할 또다른 분야는 농업개방 문제입니다.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듣기 좋은 얘기만 나왔지만 도하개발아젠다(DDA) 등 당장 눈앞에 닥친 개방의 물결이 거셉니다. 농업을 보호해서 농민들의 복지를 돕겠다는 정책은 더 이상 우리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경제체제를 효율적으로 바꿔 나가면서 어떻게 소득직불제 등을 통해 농민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이냐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농민 등 사회적 약자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만큼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나가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리= 황상진기자 april@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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