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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링컨 존경하는 대통령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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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링컨 존경하는 대통령으로서

입력
2002.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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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열한 살 되는 소녀인데, 선생님께서 꼭 대통령에 당선되시기를 빌고 있답니다. …선생님이 수염을 기르신다면 오빠들에게도 제가 말을 잘해서 선생님에게 투표하도록 하겠어요. 선생님은 얼굴이 너무 홀쪽해서 기르시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 보일 거예요. 그러면 틀림없이 당선되실 1860년 10월 15일 그레이스 베델 올림> 이 편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듬해 2월 16일, 미국 대통령 당선자 링컨이 탄 특별열차는 소녀가 사는 동네 역에 멈췄다. 간단히 대중연설을 마친 링컨은 소녀를 찾아 번쩍 들어올렸다. "네 말을 따라 수염을 길렀지." 이 소녀는 정치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선각자였다.

1년 전 발행된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이 있다. 노무현씨가 링컨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정치 공부를 겸해서 쓴 책이다. 그는 링컨을 자신의 거울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것 같다. 링컨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이 수염이다. 수염 일화는 노소(老少)세대를 잇는 아름다운 유대다. 그 에피소드가 이 책에 한 줄 밖에 나와 있지 않은 점은 애석하다.

노 당선자는 자신과 링컨 간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을 법하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어렵게 독학을 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정치 생애도 고통스런 패배로 얼룩져 있다. 링컨은 주의원과 두 번의 연방 하원의원 실패, 연방 상원의원 2회 낙선, 부통령 후보 낙선 등 쓰라린 좌절로 점철돼 있다.

대의를 위해 불리를 자초한 투쟁이긴 했으나, 노 당선자 역시 92년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 계속 참패했다. 정직한 정치가들은 흔히 쓰라린 시련 끝에 큰 명예로 보상을 받는 것 같다. 기연인지 필연인지, 자신이 존경하는 링컨이 16대 대통령이었듯이 노 당선자도 두 달 후면 16대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공통된다.

링컨에게는 두 가지 역사적 사명이 있었다. 남북전쟁 속의 나라를 분단에서 구하고, 노예제라는 대범죄로부터 국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링컨은 대화와 인내심, 겸손으로 미국 최대의 위기를 끈기 있게 풀어 나갔다. 두 난제를 모두 성공시킨 그는 지금도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노 당선자에게도 남북통일과 지역주의 극복 등 멀고 험한 명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상(理想)이 바래고 정치가 한낱 상행위처럼 변질되었을 때, 고난을 불사하며 이상을 추구한 고전적 정치인이다. 거기에 그의 저력이 있다. 고독한 투쟁을 해왔으나, 결코 외롭지 않았다. 소녀 그레이스가 링컨을 도왔듯이, 젊은이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 들었다. 젊은 지지층을 능가하는 희망이란 없다.

월드컵의 참여문화가 대선으로 옮겨가 하나의 혁명을 이루었다. 인터넷으로 무장한 그들은 낡은 정치, 구질서를 뒤엎었다. 컴퓨터에 능숙한 고학력 지지자가 많았고, 북핵이라는 변수도 투표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TV에서 젊은 여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노 후보에게 우리의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 신세기적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신세기 초인 지금은 어둠이 걷히고 동이 트는 장엄한 시간이다. 젊은 각성의 순간이다. 링컨과 동시대인이었던 소로우는 여명의 시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으로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것이, 아침의 성격이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 동이 튼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대화와 겸손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에게 현실의 벽이 높을 때는 늘 젊은 사유로 돌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진실은 단순한 것이다. 링컨처럼 그도 겸손과 용기, 정직성으로 오래 존경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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