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흥분과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마음속으로 "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 첫해는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한국최고의 투수라는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인간적인 수모였다.등판할때마다 몰매를 맞고 강판하는 회수가 잦으면서 주위의 시선도 따가워졌다. 심지어 구단 고위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도 못본 척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화가 치밀어 몇번이나 보따리를 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참았다. 속된 말로 본때를 한번 보여주고 보따리를 싸더라도 싸자는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보다 훨씬 많은 훈련을 했다.이듬해부터 성적이 좋아지면서 자신감도 회복했다.
어느날 부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서 '우물안 개구리'식의 사고가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좀처럼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야구라도 똑 같은 야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야구와 일본야구는 분명 달랐다. 그래서 일본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단점보완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였다.
흔히 잘 나가는 사람은 장점만 돋보인다. 주위 사람들도 뛰어난 사람의 장점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분명 단점은 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 큰 화가 닥쳐서야 사람들도 단점을 꼬집는다.
LA 다저스단장을 지낸 프레스코 톰슨과 한 연습생과의 대화는 음미해 볼만하다.
"톰슨씨 저스트미트가 안돼 공밑을 때리고 있습니다."(연습생)
"도대체 어느 정도 밑을 때리고 있는가."(톰슨단장)
"단지 4㎜정도라고 생각합니다."(연습생)
"그런가 그 정도 두께의 밑창을 스파이크속에 넣고 친다면 어떻겠나."(톰슨단장) 언뜻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화다. 하지만 연습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단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장점 곁에 단점이 있다." 야구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불문율중 하나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진출을 노리던 국내 간판선수들이 줄줄이 망신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라면 누구나 큰 물에서 놀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충분한 현실점검 없는 도전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의 위상만 생각했지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되짚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낭패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성공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남모르게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