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으로 뒤덮인 길거리에서, 아침저녁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일상의 사물을 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한번 비틀어보자. 공해가 되어버린 간판들, 시끄럽고 지루한 지하철 안을 신나는 미술공간으로 바꾸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 내년 1월 12일까지 여는 '간판과 디자인' 전, 서울도시철도 5호선 8량의 전동차에서 내년 3월 19일까지 열리는 '날아가는 돼지 문화열차'는 화랑과 미술관의 틀을 벗어나 나와 남, 우리 사이의 미적 소통을 생각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간판과 디자인' 전은 도시경관과 거리의 색깔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어지러운 간판문화를 비판하고, 그것을 교정하자는 실제적 목적을 가진 전시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나 하나같이 건물 전체를 도배하고 인도를 점령한 것은 오래. 옥상 위의 하늘까지 가려버린 한국의 간판문화는 광고라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 공해가 돼버렸다. 보행자의 눈길이 한 간판에 머무는 시간 0.3초를 붙잡겠다고 간판들은 전쟁 중이다.
전시는 도시 미관과 시각환경, 공공성과 사적 이익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간판문화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보기 좋고 알기 쉬운 간판의 모범은 어떤 것인지, 색채인식 프로그램의 사용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간판 색을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보여주는 이가 아니라 보는 이의 입장에서 좋은 간판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알아본다. 좋은 간판 디자인의 사례와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외국의 간판문화도 소개한다.
'날아가는 돼지 문화열차'는 돼지를 주제로 도시철도라는 일상적 교통수단을 거대한 대중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기획이다. 서양 속담에서 '돼지가 날아갈 때'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될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전시는 농협 주최로 국내 양돈산업의 이미지를 쇄신시키겠다는 것이 일차 목적이지만 즐거운 미적 오브제와 갖가지 놀거리로 승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당초 11일부터 열릴 예정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희망 돼지 모금운동과 관련해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연기돼 23일 공식 오프닝 행사를 열었다.
전동차 8량이 강용면 고창선 이부록 등 작가와 '종합선물세트' 등 설치미술팀에 의해 캐릭터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작품들로 돼지를 요리하는 주방, 돼지마을로 꾸며진다. 차량 외부는 피카소, 마티스, 니키 드 생팔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으로 재구성한 돼지의 이미지들로 장식했다.
이들의 기발하고도 진지한 상상력, 돼지를 주제로 한 어린이 그림공모전 수상작들을 보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경험은 일상을 벗어나보는 신나는 여행길이 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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