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를 낳아도'(김시덕)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 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정종철) '니 내한테 반했나'(김숙) '내 개그는 관절염이야'(이정수) 등 올해 유행어는 예외없이 KBS 2TV '개그 콘서트'(일요일 오후 8시 50분)에서 나왔다. 특히 '박준형의 생활 사투리'팀이 내놓은 사투리 유행어의 인기는 대단하다. '개그 콘서트'의 간판 스타인 이들은 수∼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대학로 갈갈이소극장에 모여 팬들을 상대로 '생활 사투리'의 새로운 버전을 내놓는다. 사투리 열풍의 진원지인 네 남자 박준형(29) 이재훈(28) 정종철(25) 김시덕(21)을 보기 위해 늘어선 인파로 대학로 골목은 미어 터진다.생활 사투리는 박준형과 정종철이 '5분 영어회화' 방식으로 펼치는 사투리 강좌로 전라도(이재훈)와 경상도(김시덕)의 두 '네이티브 스피커'를 등장시켜 독특한 사투리로 일상의 표현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박준형의 머리 속에서 싹을 틔웠다. '아이디어 창고'인 박준형이 벼르고 벼르던 사투리 개그를 '민병철 생활영어' 버전에 입히기로 하고 '인간 리듬박스' 정종철에게 효과음을 부탁했다. 그리고 전주 출신 이재훈과 울산 토박이 김시덕을 불렀다.
" '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는 어떻게 표현하나요." "존겅께 챙겨(전라도)." "오다 줏었다(경상도)." 예문을 떠올리고 그 예문을 사투리로 '강렬하게' 번역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궁리했다. " '당신의 입술은 섹시하군요'를 전라도 쪽에서는 어떻게 표현하지?"하고 김시덕이 질문을 던지면, 이재훈은 "후끈 달아오르네이∼"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대히트작인 '내 아를 낳아도'는 박준형이 '너를 사랑해'를 경상도 말로 뭐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김시덕이 '야한 버전으로' 답한 내용이었다. 네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만으로도 넉넉하게 웃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충청도까지 안 가도 웃길 수 있어요. 지금 우리들의 개그가 힘을 안 받으면 듣기평가, 장학퀴즈, 골든벨, 시네마 사투리 강좌 등 다른 장치를 떠올리겠지만 아직 잘 나가고 있잖아요?"(박준형)
그들은 '생활 사투리'의 인기를 시청자와의 공감대 그리고 '공연장에서 검증된 개그'라는 점을 꼽았다. 평범한 표현은 절대 사절한다는 원칙도 한 몫을 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절대 하지 않아요. '내 아를 낳아도'하는 식으로 변형시키죠. '나는 당신의 선배입니다'는 '눈 깔아라'하는 식으로 바꾸는 거죠."(박준형)
"최대한 민병철 생활영어에 가깝게 다가서야 웃깁니다. 조금 더 기다리게 하고 그 뒤에 사투리를 진지하게 말할 때 더 크게 웃음이 터집니다." (정종철)
누구나 어렸을 적에 대했음직한 생활영어 포맷을 입힌 뒤 "딱딱한 영어공부를 친근한 사투리 공부로 바꾼 게" 재미있게 느껴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들은 '생활 사투리'뿐 아니라 '개그 콘서트'의 인기비결은 노력이라고 단언했다.
'개그 콘서트'는 어느 코너 할 것 없이 매일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공연이 끝나면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어제의 공연이 오늘 공연의 리허설이고, 오늘의 공연이 내일 공연의 리허설"(이재훈)이라는 말에 준형은 "이제 공개 코미디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고 거든다.
이들은 "대학로 공연의 관객은 돈 주고 온 사람들이라 시청자보다 냉정하다"고 짚는다. 매일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언제 웃는지, 왜 웃지 않는지를 잘 따져본 뒤 방송에서 더 나은 것으로 '터뜨린다'. " '당신 참 부자시네요'를 경상도 버전으로 '돈 좀 빌리도'라고 했는데 공연 이틀동안 안 '터졌어요'. '시켜만 주이소'로 바꾼 뒤에야 먹혀들었지요."
인기 정상을 질주하긴 했지만 '개그 콘서트'는 저질 시비와 여성 비하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네 사람은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웃음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극장에서 3년 여 웃음을 갈고 닦으면서 웃음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온 '개그 콘서트' 팀. 그들은 신인 개그맨을 소극장에서 담금질한 뒤 안방극장에 내보냄으로써 '식상하지 않은 웃음' '검증된 웃음'을 시청자에게 선사했다고 자부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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